어제 가르시아의 두 게임 연속 만루홈런에 '이러다 진짜 4칰 되는 거 아니야!' 라는 칰레발을 속으로만 떨고있는 그래, 나는 칰빠다.
요즘 본격 야왕시대를 맞이하야 여기저기서 숨은 칰들이 '어, 저기 나도 실은 칰빠였어(긁적긁적)' 라며 속속 커밍아웃을 하고 있기에 새삼 칰빠가 있긴 있었구나 싶지만, 정말 요 몇 년간은 칰들의 암흑기였다. 성적은 하위권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고 가을야구의 기억은 먼산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혀야만 어렴풋이 떠오를 정도였다. 경기 자체가 주는 긴장감도 별로 없었다. '오늘 졌다고 실망하지 마라, 내일도 진다' 가 칰들의 대명제였다면 말 다했지 뭔가. 주변에 야구 좀 본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칰빠는 거의 찾을 수 없고, 게다가 나는 모기업이 두산인 회사를 다니는 터라 주변 많은 사람들은 두산팬, 아니면 서울출신 LG팬, 그도 아니면 모태 꼴데가 대부분이었다. (네, 제게는 매달 5장씩의 두산 공짜표가 나옵니다.)
내가 야구라는 스포츠를 처음 접한 건, 열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보는 야구 경기를 흘끔흘끔 보다가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던 날의 그 신선한 충격이란. 책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던 아이에게 야구장은 자극 투성이였다. 시끄러운 음악과 응원소리,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넓은 그라운드. 그 넓은 야구장에서 방망이가 공을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지자 족발을 뜯던 손을 멈추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러대고 노래를 불렀다. 가끔 벌건 얼굴로 욕을 해대는 아저씨들이 무섭긴 했지만 압도적인 함성과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느꼈던 어질어질한 즐거움이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야구란 즐거운 것이라는 인상만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대전에서 나고 자라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이글스의 팬이 되어야 하는 줄로 믿었다.
그 무렵 학교에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서포터즈'의 오렌지색 점퍼를 입은 사내녀석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 중 하나는 내 짝꿍이었는데 이 녀석이 내 칰빠 인생에 등장했던 첫 걸림돌이었다.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고 있던 개구쟁이와 망나니의 중간쯤 되는 이 녀석은 오렌지색 점퍼를 입고 태권도 연습을 한답시고 내 배를 힘껏 발로 차기 일쑤였다. (아, 지금도 생각하니 열받네. 그 녀석의 얼굴은 까먹지도 않는다.) 덕분에 오렌지색 점퍼에 대한 증오심으로 칰에 대한 (물론 그 시절은 치킨이 아니라 엄연한 독수리 시절이긴 했지만) 애정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무렵의 초딩 여자아이에게는 야구보다 재밌는 게 많았다.
그렇게 일요일에 아빠가 야구 중계를 보고 있으면 그냥 아, 야구 하는구나, 이글스가 이기면 이겼구나 좋네 정도로 시들시들 할 무렵에 장종훈이 나타났다. 그래, 그 연습생 신화의 장종훈 말이다. 원래 처음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는 투수보다는 타자들에게 눈이 가기 마련. 장종훈은 내 칰빠심에 다시 불을 질렀다. 세종대왕과 에디슨같은 멀고 먼 신화적인 위인들과 소설 속의 주인공들만 있던 세계에 - 그 때 나는 추리소설에 빠져있어서 미스 마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 처음으로 살아 움직이는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이글스는 정말 강했다.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한용덕이 모두 있었다. 이 시절, 나는 본격 칰빠의 길에 들어섰고, 이들이 있는 한 이 빠심은 변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아직도 이글스에 있다.
고교생이 되면서 좋아하는 스포츠가 하나 더 생겼다. 농구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웅으로 좋아했던 장종훈과 달리 농구에는 '오빠'가 있었다. 자연스레 야구는 뒷전, 훼이보릿 스포츠는 농구가 되었다. 나는 그 때 연대 김훈과 고대 현주엽의 팬이었다. (귀여운 스타일에 꽂힌 시절이었다) 그 빠른 스피드와 '오빠'라는 함성에 더해, 그 시절의 농구는 진짜 재밌었거든. 그래서인지 고등학생 시절의 이글스는 잘 기억이 안난다.
다시 야구장을 찾은 건,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대전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4개월쯤 지난 어느 여름 날. 선배들이 술 밀반입 요원의 용도로 나를 야구장에 끌고갔다. 그 당시는 야구장에 들어갈 때 소주를 숨기지 않았나 가방 검사를 심하게 하던 시절이었는데 여자들은 보통 그냥 통과시켜 주었던 것이다. 내 배낭 가득 팩소주와 맥주를 가득 채워넣고 야구장에 들어서던 그 순간, 그 열기와 함성은 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 나는 야구를, 이글스를 좋아했었어' 라는 아련한 감정은 그렇게 현재진행형으로 다시 살아 돌아왔다.
시즌에 한 다섯번 정도 야구장을 찾는, 열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글스의 팬으로 사는 나날이 그렇게 지속되었다. 99년처럼 좋은 날도 있었지만 어릴 때처럼 신났던 날은 다시 오지 않았다. 팀은 대체적으로 하위권에서 맴돌았고, 독수리는 치킨이 되었다. 하위권을 맴도는 팀의 팬질은 쉽지 않다. 어디가서 나 칰빠요, 하고 밝혔다가는 비웃음을 사거나 그래도 내가 낫구나 하는 안도감 섞인 위로를 듣기 마련인 것이다. 게다가 응원하는 팀이 대패하는 경기를 보는 건 생각보다 마음 아픈 일이다. (얼마전 롯데가 칰을 상대로 쓸데없이 점수를 모았던 날, 예끼를 들고 울던 금발머리 아가씨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경기를 보다가 차마 보지 못하고 꺼버리는 날이 많아졌고, 보지 못한 경기의 스코어를 확인할 때도 '설마, 이기진 않았을 거야' 라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칰빠 인생 최대의 고비가 찾아왔으니 구단주와 그의 망나니 둘째 아들. 한화그룹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오만 정이 뚝! 떨어지는 것이다. 저 조폭스러운 집안이 구단주라고 버티고 있고, 게다가 팀에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는 그들이 보기 싫어서 몇번이고 애정을 버리고자 했었지. 그래도 칰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에이씨'라는 마음이 아무리 들어도 눈길은 오렌지색 유니폼에 저절로 가 있었다. 그리고 꼭 안쓰러워서든 사랑스러워서든 한명씩은 애정의 대상이 있었다. 김별명이 그랬고, 내 마음 속의 아이돌 류뚱이 그랬다. 우리 현진이가 던지는 날이면 아무리 바빠도 문자 중계창을 한쪽에 띄워 놓았다. 무엇보다, 칰의 경기는 쉽게 포기하는 경기가 아니어서 버릴 수가 없었다. 못해도 그들은 끝까지 뛰었고 쉽게 경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지겠지, 뭐'라는 마음으로 중계를 보기 시작했더라도 어느 새 허리를 세우고 주먹을 쥐고 열심히 하는 선수를 열심히 지켜보게 만들었다. 이기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는 팀. 덕분에 아무리 연속 꼴찌를 해도, 최약체라도 나는 아직까지 칰빠다.
다른 팀의 팬들이 보기에는 고작 6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미 가을 야구 확정인 것처럼 신나있는 칰빠들이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별명이도 가고, 꽃도 빼앗기고 희망이라고는 현진이 하나인 것 같았던 최약체팀이 이렇게 껄끄러운 팀이 되고, 져도 재미있는 경기를 하는 팀이 되고, 이길 때는 정말 온갖 희열을 가득 안겨주는 팀이 된 것이 느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거라. 요즘처럼 칰 이야기가 스포츠면을 달구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최훈 카툰에 이렇게 칰이 자주 등장하다니 놀라운 걸 넘어서 감격스럽다.
나는 야구가 좋다. 그 마름모꼴의 경기장에서 공과 방망이로 맞대결 하는 방식이, 힛하는 순간의 짜릿함이, 스트라잌~ 의 쾌감이, 투수 홀로 책임지는 마운드의 긴장감이, 응원의 열기가, 맥주와 치킨과 함성이 너무 좋다. 그리고 이글스가 내 팀이라는 것이 좋다. 집중해서 터뜨리는 그 쾌감이, 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괴롭히는 그 스타일이 좋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명제를 제일 잘 보여주는 팀이 내 팀이라서 좋다. 최! 강! 한! 화! 라며 배를 내밀며 외치는 순간이 신나 죽겠다.
심정적 꼴데였던 신랑이 (이 분은 원래 축빠임) 이제 거의 칰빠로 넘어왔다. 유니폼도 새로 주문하려 한다. 아이가 생기면 모태 칰린이로 만들 것이다. 언젠가는 셋이 야구장에 가야지. 그때도 칰이 이기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팀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본격 야왕시대를 맞이하야 여기저기서 숨은 칰들이 '어, 저기 나도 실은 칰빠였어(긁적긁적)' 라며 속속 커밍아웃을 하고 있기에 새삼 칰빠가 있긴 있었구나 싶지만, 정말 요 몇 년간은 칰들의 암흑기였다. 성적은 하위권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고 가을야구의 기억은 먼산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혀야만 어렴풋이 떠오를 정도였다. 경기 자체가 주는 긴장감도 별로 없었다. '오늘 졌다고 실망하지 마라, 내일도 진다' 가 칰들의 대명제였다면 말 다했지 뭔가. 주변에 야구 좀 본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칰빠는 거의 찾을 수 없고, 게다가 나는 모기업이 두산인 회사를 다니는 터라 주변 많은 사람들은 두산팬, 아니면 서울출신 LG팬, 그도 아니면 모태 꼴데가 대부분이었다. (네, 제게는 매달 5장씩의 두산 공짜표가 나옵니다.)
내가 야구라는 스포츠를 처음 접한 건, 열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보는 야구 경기를 흘끔흘끔 보다가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던 날의 그 신선한 충격이란. 책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던 아이에게 야구장은 자극 투성이였다. 시끄러운 음악과 응원소리,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넓은 그라운드. 그 넓은 야구장에서 방망이가 공을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지자 족발을 뜯던 손을 멈추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러대고 노래를 불렀다. 가끔 벌건 얼굴로 욕을 해대는 아저씨들이 무섭긴 했지만 압도적인 함성과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느꼈던 어질어질한 즐거움이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야구란 즐거운 것이라는 인상만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대전에서 나고 자라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이글스의 팬이 되어야 하는 줄로 믿었다.
그 무렵 학교에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서포터즈'의 오렌지색 점퍼를 입은 사내녀석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 중 하나는 내 짝꿍이었는데 이 녀석이 내 칰빠 인생에 등장했던 첫 걸림돌이었다.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고 있던 개구쟁이와 망나니의 중간쯤 되는 이 녀석은 오렌지색 점퍼를 입고 태권도 연습을 한답시고 내 배를 힘껏 발로 차기 일쑤였다. (아, 지금도 생각하니 열받네. 그 녀석의 얼굴은 까먹지도 않는다.) 덕분에 오렌지색 점퍼에 대한 증오심으로 칰에 대한 (물론 그 시절은 치킨이 아니라 엄연한 독수리 시절이긴 했지만) 애정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무렵의 초딩 여자아이에게는 야구보다 재밌는 게 많았다.
그렇게 일요일에 아빠가 야구 중계를 보고 있으면 그냥 아, 야구 하는구나, 이글스가 이기면 이겼구나 좋네 정도로 시들시들 할 무렵에 장종훈이 나타났다. 그래, 그 연습생 신화의 장종훈 말이다. 원래 처음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는 투수보다는 타자들에게 눈이 가기 마련. 장종훈은 내 칰빠심에 다시 불을 질렀다. 세종대왕과 에디슨같은 멀고 먼 신화적인 위인들과 소설 속의 주인공들만 있던 세계에 - 그 때 나는 추리소설에 빠져있어서 미스 마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 처음으로 살아 움직이는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이글스는 정말 강했다.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한용덕이 모두 있었다. 이 시절, 나는 본격 칰빠의 길에 들어섰고, 이들이 있는 한 이 빠심은 변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아직도 이글스에 있다.
고교생이 되면서 좋아하는 스포츠가 하나 더 생겼다. 농구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웅으로 좋아했던 장종훈과 달리 농구에는 '오빠'가 있었다. 자연스레 야구는 뒷전, 훼이보릿 스포츠는 농구가 되었다. 나는 그 때 연대 김훈과 고대 현주엽의 팬이었다. (귀여운 스타일에 꽂힌 시절이었다) 그 빠른 스피드와 '오빠'라는 함성에 더해, 그 시절의 농구는 진짜 재밌었거든. 그래서인지 고등학생 시절의 이글스는 잘 기억이 안난다.
다시 야구장을 찾은 건,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대전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4개월쯤 지난 어느 여름 날. 선배들이 술 밀반입 요원의 용도로 나를 야구장에 끌고갔다. 그 당시는 야구장에 들어갈 때 소주를 숨기지 않았나 가방 검사를 심하게 하던 시절이었는데 여자들은 보통 그냥 통과시켜 주었던 것이다. 내 배낭 가득 팩소주와 맥주를 가득 채워넣고 야구장에 들어서던 그 순간, 그 열기와 함성은 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 나는 야구를, 이글스를 좋아했었어' 라는 아련한 감정은 그렇게 현재진행형으로 다시 살아 돌아왔다.
시즌에 한 다섯번 정도 야구장을 찾는, 열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글스의 팬으로 사는 나날이 그렇게 지속되었다. 99년처럼 좋은 날도 있었지만 어릴 때처럼 신났던 날은 다시 오지 않았다. 팀은 대체적으로 하위권에서 맴돌았고, 독수리는 치킨이 되었다. 하위권을 맴도는 팀의 팬질은 쉽지 않다. 어디가서 나 칰빠요, 하고 밝혔다가는 비웃음을 사거나 그래도 내가 낫구나 하는 안도감 섞인 위로를 듣기 마련인 것이다. 게다가 응원하는 팀이 대패하는 경기를 보는 건 생각보다 마음 아픈 일이다. (얼마전 롯데가 칰을 상대로 쓸데없이 점수를 모았던 날, 예끼를 들고 울던 금발머리 아가씨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경기를 보다가 차마 보지 못하고 꺼버리는 날이 많아졌고, 보지 못한 경기의 스코어를 확인할 때도 '설마, 이기진 않았을 거야' 라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칰빠 인생 최대의 고비가 찾아왔으니 구단주와 그의 망나니 둘째 아들. 한화그룹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오만 정이 뚝! 떨어지는 것이다. 저 조폭스러운 집안이 구단주라고 버티고 있고, 게다가 팀에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는 그들이 보기 싫어서 몇번이고 애정을 버리고자 했었지. 그래도 칰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에이씨'라는 마음이 아무리 들어도 눈길은 오렌지색 유니폼에 저절로 가 있었다. 그리고 꼭 안쓰러워서든 사랑스러워서든 한명씩은 애정의 대상이 있었다. 김별명이 그랬고, 내 마음 속의 아이돌 류뚱이 그랬다. 우리 현진이가 던지는 날이면 아무리 바빠도 문자 중계창을 한쪽에 띄워 놓았다. 무엇보다, 칰의 경기는 쉽게 포기하는 경기가 아니어서 버릴 수가 없었다. 못해도 그들은 끝까지 뛰었고 쉽게 경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지겠지, 뭐'라는 마음으로 중계를 보기 시작했더라도 어느 새 허리를 세우고 주먹을 쥐고 열심히 하는 선수를 열심히 지켜보게 만들었다. 이기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는 팀. 덕분에 아무리 연속 꼴찌를 해도, 최약체라도 나는 아직까지 칰빠다.
다른 팀의 팬들이 보기에는 고작 6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미 가을 야구 확정인 것처럼 신나있는 칰빠들이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별명이도 가고, 꽃도 빼앗기고 희망이라고는 현진이 하나인 것 같았던 최약체팀이 이렇게 껄끄러운 팀이 되고, 져도 재미있는 경기를 하는 팀이 되고, 이길 때는 정말 온갖 희열을 가득 안겨주는 팀이 된 것이 느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거라. 요즘처럼 칰 이야기가 스포츠면을 달구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최훈 카툰에 이렇게 칰이 자주 등장하다니 놀라운 걸 넘어서 감격스럽다.
나는 야구가 좋다. 그 마름모꼴의 경기장에서 공과 방망이로 맞대결 하는 방식이, 힛하는 순간의 짜릿함이, 스트라잌~ 의 쾌감이, 투수 홀로 책임지는 마운드의 긴장감이, 응원의 열기가, 맥주와 치킨과 함성이 너무 좋다. 그리고 이글스가 내 팀이라는 것이 좋다. 집중해서 터뜨리는 그 쾌감이, 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괴롭히는 그 스타일이 좋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명제를 제일 잘 보여주는 팀이 내 팀이라서 좋다. 최! 강! 한! 화! 라며 배를 내밀며 외치는 순간이 신나 죽겠다.
심정적 꼴데였던 신랑이 (이 분은 원래 축빠임) 이제 거의 칰빠로 넘어왔다. 유니폼도 새로 주문하려 한다. 아이가 생기면 모태 칰린이로 만들 것이다. 언젠가는 셋이 야구장에 가야지. 그때도 칰이 이기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팀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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