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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것들

여행 막판까지 아주아주 자알 버텨주시다가 돌아와 긴장 풀리니 하나씩 삐그덕 거리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선은 왼발. 별헤는 밤, 산 뻬드로 아따까마에서 정전과 함께 은하수를 바라보며 계단에서 낙하했던 그 밤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왼발이 밤만 되면 붓는다. 열심히 침도 맞고 하고 있지만 너무 오래 부풀어버린 풍선처럼 몸이 지금 상태를 정상으로 인식하게 된 듯 하다고. 뭐 아프지도 않고 조금 불편한 정도이긴 하지만 어쨌든 걱정은 걱정.
그리고 수없는 바이러스 초토화와 낙하의 밤에 나랑 같이 낙하하기도 하고 수많은 버스의 덜컹거림을 견뎌내며 말썽은 피웠으나 그럭저럭 간신히 수명을 이어가고 있던 나의 랩탑이 드디어 오늘 장렬히 사망해주셨다. 마지막 꾸바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는 이유도 모르고 기사회생하였으나 이번엔 가망이 없어보여 결국은 서비스센터에 들고왔다. 다행히 모든 데이터들은 백업해두었으니 여행기도 여행사진들도 모두 무사하다. 전원이 들어와도 윈도우 부팅이 안되고, 랩탑을 조금만 움직여도 전원이 나가버리는 이상한 증세를 보인다. 뭐, 일년을 그 험한 여행 같이 했는데 이 정도로 아프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서비스센터의 고객 대기실에 앉아 블로깅을 하는 중이다. 랩탑이 망가졌다는 이유로 오늘도 글을 쓰지 않고 있다. 이번주에는 세 꼭지 정도 완성해서 팀장님께 보내야 할 터인데.
그러고보니 인도 아그라에서 고장났던 나의 시그마 DP-1이 수리를 마쳤다는데..어서 찾아와야 할 터인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DP-2가 나왔더군. 세상은 여전히 눈부신 속도로 돌아간다.
아, 돌아온온 후 몸무게도 1킬로 정도 불어났다. 엄마가 귀국기념으로 사준 원피스가 다시 맞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냐며 한 걱정하시나보다. 밥 먹는 양도 조절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지난 일년간과 현저하게 차이나는 운동량 때문일테지. 아니다. 실은 술 때문이다. 하하하.

이력서를 보내는 나날들. 집도 절도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아마도 예전같았으면 이런 상황들에 매우 전전긍긍했겠지만 어쩐지 '뭐 이런 날들도 있는거지' 라면서 여유를 찾고 있다. 여행 후 달라진 것이랄까. 이건 고장난 게 아니다. 푸훗.

by 니야 | 2009/07/01 16:57 | 외계인 잡설 | 트랙백 | 덧글(3)

제보 바란다

1. 끈적거린다. 이제 왠만한 더위는 더위로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뜨거움'에는 익숙해졌지만 - 35도 이상으로는 올라가야 덥다고 할 수 있지 않겠소! - 인도 이후로 건조한 여름만을 지나온 내게 이런 끕끕함은 정말 지치는 것이었더라. 내가 사우나를 싫어하는 건 그 습하고 답답한 공기 때문이었는데 요즘의 날씨는 마치 저온 사우나같아서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사년을 보냈던 멕시코의  P가 한국의 장마는 너무나 싫다고 하던 그 단호한 말투가 이제사 진정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오늘도 후배 녀석 결혼식에 갔다 돌아오는데 얼굴이 사우나에 들어갔다 나온 듯 번들번들. 아아. 유분기 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의 언니들은 어떤 비법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 새삼 다시 궁금해진다. 혹시 알고 있수?

2. 슬슬 이력서를 디밀기 시작하는 가운데 백수의 가운을 벗는다는 핑계로 제습효과 빵빵한 에어컨이 나오는 좋은 까페를 찾아 글이나 쓸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여행 떠나기 전 막바지 원고 마감에 랩탑을 들고 까페를 찾던 그 시간들이 참으로 좋았던게다. 개인 작업실과도 같았던 '종이컵 통신'이 사라져버린 지금 작업실로 좋은 카페를 다시 찾아내야만 한다. 나의 글쓰기란 조금 이상해서 '신내림'이 없으면 글이 한톨도 안나올 때가 많다. 엊그제는 여행기의 글감들이 마구 솟아나 그걸 아이팟 메모장에 저장하다가 지하철 역을 다섯개나 지나쳐 버렸다. 내친김에 그 기운을 받아 50여개의 목차를 세 시간만에 모두 정리해내고 말았다. 손가락이 마구 내달려서 글을 쓰는 나는 첫문장을 시작할 때 마지막 문장이 어떻게 끝나는지 스스로도 절대 모르는 스타일이다. 다만 그 신내림이 멈춘 순간, 나는 끈 떨어진 마리오네트같다. 지금이 딱 그렇다. 목차를 모두 정리해놓고 정작 글은 한톨도 안쓰고 있다. 흑. 정신 산란하지 않은 장소라도 구해야겠다. 암튼 이러저러 그러니 조용하고 습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 한적하고 의자 편하고 무선 인터넷과 전원이 구비된 까페를 아시는 분은 제보 바란다.

3.  나는 늘 좋은 연인이 되고자 했으나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안좋은 기류를 탔던 적이 많았다. 그때는 노력했으니 내 잘못은 없다고, 그저 둘이 안맞았을 뿐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서른을 조금 넘겨 생각해보니 내가 숨고르는 방법을 몰랐던 탓이 큰 것 같다. 힘들 때 진정으로 위안이 되는 연인이 되고 싶어서 G군을 위한 개인기를 연마하기로 했다. 이거 한방이면 사람 제대로 웃겨준다는 개인기가 있으면 제보 바란다.

4. 한국에 돌아오면 극장에도 많이 가고 '한국어'로 된 책도 무지하게 읽어주리라 다짐했었다. 극장에는 몇 번 갔다. '마더'와 '스타트랙-더 비기닝'과 '드래그 미 투 헬'과 '로나를 찾아서'를 봤다. 네 편 모두 훌륭했고 만족스러웠다. '드래그 미 투 헬'은 내리기 전에 다시 보고 싶은데. 암튼 지난 일년간 못 본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은데 도대체 어떤 영화가 괜찮았는지 주변 친구들이 기억을 못하더라. '추격자' 봤어? 막 이러는데 '추격자'는 나 떠나기 전에 개봉한 영화거든요. 책도 그렇다. 얼마 전에 책 좀 고르려고 대형서점에 들렀는데 도무지가 사고 싶은 책이 하나도 없는거라. 연예인들이 '나 책도 써요'하는 것들이 대세인데다 너무 예쁘고 샤방샤방해서 감히 팔을 펼 수 없는 것들도 많고. 암튼 그러니 2008년 봄 이후의 필견 영화들과 필독 책들 있으면 추천 바란다.

by 니야 | 2009/06/28 20:07 | 외계인 잡설 | 트랙백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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