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7월 30일
여름밤의 쇼핑카트
내가 생각해도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늘의 나는 유난히 신경질적이었다. 그리고 그 신경질을 그는 옆에서 참 잘도 받아주고 있었다. 물론 내게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것을 감안한다 해도 훌륭한 인내심이다.
나도 안다. 내가 맘만 먹으면 얼마나 사람의 신경끝을 툭툭 찢어놓는 비아냥을 날릴 수 있는지. 그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오늘은 그만 해야지. 슬근슬근 미안하니까.
사과의 의미로 대형마트에 쇼핑을 가자고 하였다. 카트를 밀고 다니는 대형 할인점 쇼핑을 그는 꽤나 좋아했다. 나도 짐꾼이 생겨 좋았다. 옷이나 악세서리 쇼핑도 이렇게 좋아해주면 좋을텐데 그건 무리겠지.
요즘 날이 더워서인지 꽤나 늦은 시각인데도 할인점은 카트를 끌고다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왠 애들은 이리 많은지 시끌시끌 놀이공원같다.
세개들이 햇반에 하나를 더 얹어주기에 기분좋게 열흘은 먹을만한 햇반을 담고, 커피믹스에 햇반을 세개나 또 붙여주기에 그것도 하나 더 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당분간 밥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라면은 과연 너구리도 빠질 수 없고, 해장으로 꽤나 괜찮은 오징어 짬뽕도 카트에 던져넣는다. 일요일용 짜파게티도 넉넉히. 카트에 깔린 라면들을 보니 죽어도 한동안은 썩지 않겠구나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는 나중에 죽으면 화장해야지. 강에 뿌리면 환경오염되니까 하얀 항아리에 담아서 납골묘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아생전 제일 귀여운 미소를 짓고있는 사진을 붙여놔야지. 음. 엘레강스하다거나 똑똑하다거나 그런 사진도 좋지만 기왕이면 이 할머니 되게 귀여웠어요. 라는 얘기가 듣고싶다.
특별간식 밀감 통조림도 집어든다. 왜 편의점에는 황도밖에 안파는 것일까. 밀감 통조림이 훨씬 더 맛있는데. 밀감을 유리 그릇에 담고 얼음 몇개만 띄우면 환상적인데 말이지. 아침으로 먹을 뮤즐리 도 던져넣는다. 아, 그럼 우유도 사야지.
김치도 한포기 사고, 밑반찬도 산다. 전라도 반차안, 전라도 반찬 외쳐대는 목청좋은 아주머니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더니 이쁘니까 더준다고 무말랭이를 팍팍 넣어주신다. 가끔은 둥글둥글 복스러운 몸매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입맛없는 요즘, 더운밥에 얹어 먹으면 좋은 명란젓도 산다. 나는 명란젓을 보면 꼭 영화 '비밀'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딸의 몸에 들어간 아내와 마주보고 앉아 명란젓 하나를 아예 통째로 밥에 얹어먹는 그 장면. 저렇게 짠 것을 한꺼번에 먹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맛있지만 저리 먹어대다간 물을 1리터는 들이켜야하지 않을까, 강렬했었나보다.
그렇게 이런저런 먹을 것들로 카트를 채우고 마지막으로 과일코너에 들렀다. 수박은 너무 커서 내 조그만 냉장고에 들어갈리 만무하니 무리고 복숭아나 몇개 사면 좋겠다 싶었다. 모든 과일을 좋아하지만 복숭아는 그중 특별하다. 어릴적 사진을 보면 복숭아를 먹고 있는 사진이 열장쯤 된다. 그 외로 토마토, 수박, 참외, 사과가 각각 한장씩 있다.
내가 맛있어 보이는 복숭아를 심사숙고 고르는 동안 그는 음료수를 사오겠다며 카트를 끌고 저쪽으로 가버렸다. 금방 올께.
솜털이 보송한 핑크빛 복숭아를 다섯개까지 골랐을 때, 저쪽에서 야채를 고르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아, 내 첫 연애상대네. 피식.
그때 이후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이다. 작은 눈과 통통한 볼과 동그란 안경. 도무지 내취향은 아닌데 왜 좋아했나 싶은 그 얼굴은 나이도 안먹는다. 옆에는 와이프가 있다. 그보다 8살 연상인 언니는 갸날프고 애기같은 사람이다. 서로 얼굴도 알고 가끔 술도 같이 먹는 사이지만 아는 척 하기가 망설여졌다. 길거리에서라면 손을 번쩍들어 반가워했을 테지만, 어쩐지 나란히 카트를 밀며 쇼핑을 하고있는 부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같아 보였다. 완벽한 둘만의 사생활의 영역. 이상하다. 대형마트의 쇼핑카트는 어쩐지 그런 느낌이다.
나는 복숭아에 집중하는 척 했다. 세상은 왜이리 좁은거냐 투덜거리며 음료수를 사러간 그가 오기를 기다린다. 복숭아 밭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란 말이야. 투덜투덜. 얼른 돌아오란 말이야.
두리번 두리번 흰 야구모자를 찾는다. 저기 멀리서 느릿느릿 카트를 끌고오는 그가 보인다. 왜 이렇게 늦었어.
향긋한 냄새가 나는 복숭아를 카트에 담으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카트 밑바닥에 숨겨진 술병을 꺼내들며 눈을 흘겼다. 다시 갖다놓고 와.
궁시렁대는 그의 옆에서 나란히 카트를 밀었다.
혼자오지 않아 다행이야.
네네, 짐꾼이 있어야죠 마님. 마님 혼자는 이거 다 못들어요.
그럼그럼, 돌쇠야.
모자를 벗겨 짧은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준다. 그는 내 웃음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뭐, 알면 좋고. 메롱.
나도 안다. 내가 맘만 먹으면 얼마나 사람의 신경끝을 툭툭 찢어놓는 비아냥을 날릴 수 있는지. 그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오늘은 그만 해야지. 슬근슬근 미안하니까.
사과의 의미로 대형마트에 쇼핑을 가자고 하였다. 카트를 밀고 다니는 대형 할인점 쇼핑을 그는 꽤나 좋아했다. 나도 짐꾼이 생겨 좋았다. 옷이나 악세서리 쇼핑도 이렇게 좋아해주면 좋을텐데 그건 무리겠지.
요즘 날이 더워서인지 꽤나 늦은 시각인데도 할인점은 카트를 끌고다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왠 애들은 이리 많은지 시끌시끌 놀이공원같다.
세개들이 햇반에 하나를 더 얹어주기에 기분좋게 열흘은 먹을만한 햇반을 담고, 커피믹스에 햇반을 세개나 또 붙여주기에 그것도 하나 더 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당분간 밥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라면은 과연 너구리도 빠질 수 없고, 해장으로 꽤나 괜찮은 오징어 짬뽕도 카트에 던져넣는다. 일요일용 짜파게티도 넉넉히. 카트에 깔린 라면들을 보니 죽어도 한동안은 썩지 않겠구나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는 나중에 죽으면 화장해야지. 강에 뿌리면 환경오염되니까 하얀 항아리에 담아서 납골묘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아생전 제일 귀여운 미소를 짓고있는 사진을 붙여놔야지. 음. 엘레강스하다거나 똑똑하다거나 그런 사진도 좋지만 기왕이면 이 할머니 되게 귀여웠어요. 라는 얘기가 듣고싶다.
특별간식 밀감 통조림도 집어든다. 왜 편의점에는 황도밖에 안파는 것일까. 밀감 통조림이 훨씬 더 맛있는데. 밀감을 유리 그릇에 담고 얼음 몇개만 띄우면 환상적인데 말이지. 아침으로 먹을 뮤즐리 도 던져넣는다. 아, 그럼 우유도 사야지.
김치도 한포기 사고, 밑반찬도 산다. 전라도 반차안, 전라도 반찬 외쳐대는 목청좋은 아주머니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더니 이쁘니까 더준다고 무말랭이를 팍팍 넣어주신다. 가끔은 둥글둥글 복스러운 몸매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입맛없는 요즘, 더운밥에 얹어 먹으면 좋은 명란젓도 산다. 나는 명란젓을 보면 꼭 영화 '비밀'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딸의 몸에 들어간 아내와 마주보고 앉아 명란젓 하나를 아예 통째로 밥에 얹어먹는 그 장면. 저렇게 짠 것을 한꺼번에 먹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맛있지만 저리 먹어대다간 물을 1리터는 들이켜야하지 않을까, 강렬했었나보다.
그렇게 이런저런 먹을 것들로 카트를 채우고 마지막으로 과일코너에 들렀다. 수박은 너무 커서 내 조그만 냉장고에 들어갈리 만무하니 무리고 복숭아나 몇개 사면 좋겠다 싶었다. 모든 과일을 좋아하지만 복숭아는 그중 특별하다. 어릴적 사진을 보면 복숭아를 먹고 있는 사진이 열장쯤 된다. 그 외로 토마토, 수박, 참외, 사과가 각각 한장씩 있다.
내가 맛있어 보이는 복숭아를 심사숙고 고르는 동안 그는 음료수를 사오겠다며 카트를 끌고 저쪽으로 가버렸다. 금방 올께.
솜털이 보송한 핑크빛 복숭아를 다섯개까지 골랐을 때, 저쪽에서 야채를 고르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아, 내 첫 연애상대네. 피식.
그때 이후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이다. 작은 눈과 통통한 볼과 동그란 안경. 도무지 내취향은 아닌데 왜 좋아했나 싶은 그 얼굴은 나이도 안먹는다. 옆에는 와이프가 있다. 그보다 8살 연상인 언니는 갸날프고 애기같은 사람이다. 서로 얼굴도 알고 가끔 술도 같이 먹는 사이지만 아는 척 하기가 망설여졌다. 길거리에서라면 손을 번쩍들어 반가워했을 테지만, 어쩐지 나란히 카트를 밀며 쇼핑을 하고있는 부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같아 보였다. 완벽한 둘만의 사생활의 영역. 이상하다. 대형마트의 쇼핑카트는 어쩐지 그런 느낌이다.
나는 복숭아에 집중하는 척 했다. 세상은 왜이리 좁은거냐 투덜거리며 음료수를 사러간 그가 오기를 기다린다. 복숭아 밭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란 말이야. 투덜투덜. 얼른 돌아오란 말이야.
두리번 두리번 흰 야구모자를 찾는다. 저기 멀리서 느릿느릿 카트를 끌고오는 그가 보인다. 왜 이렇게 늦었어.
향긋한 냄새가 나는 복숭아를 카트에 담으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카트 밑바닥에 숨겨진 술병을 꺼내들며 눈을 흘겼다. 다시 갖다놓고 와.
궁시렁대는 그의 옆에서 나란히 카트를 밀었다.
혼자오지 않아 다행이야.
네네, 짐꾼이 있어야죠 마님. 마님 혼자는 이거 다 못들어요.
그럼그럼, 돌쇠야.
모자를 벗겨 짧은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준다. 그는 내 웃음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뭐, 알면 좋고. 메롱.
# by | 2005/07/30 11:57 | 낯선 꿈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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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연애~ '메롱'의 느낌, 좋은데요~
니야님 글을 읽으면 평범한 일상도 좀 달라보이는 느낌이에요 :)
'마님'의 어감이란 참 미묘하죠. 좋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몸 상해요;ㅠ;
왜이리 변덕이 끓는건지. 원.
여전히 북적대는 니야님의 홈은, 항상 즐겁군요. :D
젠짱 / 일요일엔 무조건 짜파게티입니다. ^^
요연 / 포장을 잘하나봐요. 후훗
시리우스 / 시식코너는 금새 동나버리더군요. 무서워라
xizang / 마님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후후
powdersnow / 뭐, 자취생 라이프가 다 그렇죠..ㅜㅜ
달바람 / 짐꾼이 있으니 물건을 많이 사게 됩니다
vineglow / 아, 그래서 한동안 뜸하셨군요. 웰컴 백입니다.
미친병아리 / 덤으로 얹어주는게 어찌나 많은지!
abangbear / 실전 카트라이더도 재미납니다 :)
saraswati / 응, 요즘 다시 다정모드야.
저처럼 퍼석거리는 건조함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덕분에 잠시 웃고 갑니다.
Nariel / 어여어여 같이 카트를 밀어보아요
_권_ / 웃게 만들었다니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