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야, 터키 방랑기 2 - 이스탄불, 그 첫 저녁

드디어 이스탄불이다. 먼 옛날에 비잔티움이었고, 콘스탄티노플이었고 지금은 이스탄불로 지층이 선명한 계곡처럼 역사가 첩첩이 쌓여있는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
10kg이 넘는 내 녹색 배낭을 짊어매고 발걸음은 내딛는다. 아, 그 전에 우선 환전을 해야지. 100유로를 내고 160리라를 건내받았다. 공항의 투어리스트 안내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다가와서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준다. 메트로를 탄다니 메트로로 내려가는 입구까지 데려다주네? 여성에게 친절하다니 그 말이 맞긴 맞나보다. 훗훗.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표지판을 따라 걸으니 매표소가 나왔다. 메트로는 1.1YTL. 환전할때 받은 동전을 건내니 매표소 아저씨가 어디가냐고 묻는다. '술탄아흐멧' 이라고 대답하니 또 나서서 메트로랑 트람바이 노선표를 꺼내 여기까지 가서 여기서 갈아타야한다고 일러주었다. 싱긋 웃으며 생큐를 날려주니 'Good Luck' 이라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럼요, 여기 온 것도 행운인걸요.

메트로를 타고 악사라이역까지 이동한다. 네명이 마주보며 앉게 되어있는 구조이다.
커다란 배낭을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 창밖의 풍경에 시선을 집중한다. 대도시의 풍경이다. 그러나 역시 건물마다 붙은 기하학 무늬의 타일이 이국임을, 이곳이 이스탄불임을 말해주었다. 공항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특유의 체취도 점점 진해지는 듯.
메트로 안을 한바퀴 휘이 둘러보면서 터키인들의 생김을 구경한다. 아시아보다는 유럽쪽의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커다랗고 긴 속눈썹과 까무잡잡한 피부, 짙게 기른 수염이 또한 특별하다.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쓰고 있다. 중동과 유럽인들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로마와 오스만이 뒤섞인 얼굴에도 역사가 녹아있다.
한참을 사람 구경하다 그들 또한 나를 구경하는 시선을 느끼며 눈을 돌렸는데 맞은편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음, 그뿐이면 좋았지만.....그가 난데없이 윙크를 하는 것 아닌가! 허거걱, 설마 나한테 한 것은 아니겠지, 아닐거야. 분명 눈에 뭐가 들어간거야. 분명해...
시선을 피해 창밖에만 눈을 고정시켰지만 역시 그의 눈길이 내 옆얼굴에 꽂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으흐흑. 싫다 싫어. 기왕이면 터키에서의 첫 작업은 느끼하게 잘생긴 청년이 해주길 바랬단 말이다. 이 칸 안에 이렇게 많은 잘생긴 청년들이 있건만(터키 청년들 대체적으로 잘생겼다) 왜! 하필! 낙타와 말의 중간형태로 생긴 당신인가 말이다!


- 터키의 메트로. 나름 깨끗합니다만 좀 더웠어요 -

이글루스 가든 - 여행다니기

20여분간을 어쩔줄 몰라하다 내려야 할 악사라이 역에 도착하여 마음을 쓸어내리며 역을 빠져나왔다.
근데 빠져나온 것은 좋은데 트램을 타는 곳은 도대체 어디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어디 물어볼 곳은 없나 살피는데 누가 팔을 톡톡 두드린다. 돌아보니 아까 그놈 -_- 말과 낙타의 중간녀석이다. 어디서 왔냐, 뭘 찾냐, 내가 데려다주겠다 끈질기기도 하다. 되었다고 손사레를 쳐도 졸졸졸졸 따라오는데 트램을 타는 것보다 이놈을 어떻게 떼어내는가가 더 문제다.
그때! 저기 멀리 파란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내 눈에 클로즈업으로 잡혔다. 아아, 세상에 경찰이 이렇게 반가울데가! 운동권 경력때문인지 경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니었어, 경찰은 멋진 사람이었던거야! 당장 경찰 아자씨에게 다가가 트램타는 곳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친절하게 트램타는 곳까지 안내해주었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말-낙타 녀석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 가고 있더라. 잇힝~ 아저씨 쌩큐생큐.

처음 타는 노면전차 트램. 깔끔하고 시원하다. 아이를 잔뜩 데리고 있는 아줌마가 친절하게 가방 내려놓는 것도 도와주었다. 아줌마, 아이들이 너무 예쁜거 아니에요? 정말 길고 긴 속눈썹과 깊고 동그란 눈에 갈색으로 부드럽게 곱슬거리는 머리. 터키 아이들은 하나같이 인형같다.
악사라이에서 얼마안가 술탄아흐멧이라는 전자 언니의 목소리. 자자, 이곳이 이스탄불 여행자들의 출발지 술탄아흐멧이군요. 척 내리니 역시 외국인들이 많다. 그리고 역시나 호객꾼 또한 많다.
첫날의 숙소는 인터넷을 통해 미리 예약을 해놨기 때문에 바우처를 들고 숙소로 향했다. 아, 여기서 문제 봉착하지 않으면 또한 여행이 너무 재미없는 법. 바우처에 나온 약도가 너무 간단한 것이다. 술탄아흐멧의 골목골목은 무지 복잡했는데 약도는 도무지 대략의 위치말고는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
약도를 따라 걷다보니 사진에서 많이 본 높다란 기둥이 나온다. 여기는 히포드롬이군요. 흠흠 내일 오기로 되어있는 곳인데...아흑.

자, 그럼 이제 배낭여행자의 특권인 무조건 붙잡고 물어보기 신공을 발동할 수 밖에 없다. 바우처를 보여주며 이 호텔이 어디있는지를 아냐고 물어보기를 무려 일곱번. 길을 물어볼때마다 '어디서 왔냐' '혼자왔냐' '결혼했냐' '남자친구는 있냐' '차를 먹고 가지 않으련' '아님 오늘밤에 술한잔 어떠셔' 라는 6종셋트 한구성의 같은 질문을 되받아야했고, 이 모든 질문에 '남한' '혼자 온 여름휴가다' '아직 싱글' '남친은 한국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지금 바쁘다' '고맙지만 되었다' 6종세트 한구성의 답을 해야 겨우 길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의 거쳐 드디어 숙소를 발견했을 때의 그 희열이란!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얼굴은 번들거려 헥헥거리는 내 모습은 정말 흉측했을테지만 암튼 기뻤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숙소를 찾는 40분간의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작업거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서로 기분 상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몸으로 터득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삽질은 나쁘지 않았어.

예약해놓은 방은 정말 단촐한 싱글룸이었다. 넓은 침대와 욕실과 천정에 달린 TV가 전부. 그나마 TV는 지직거려 잘 나오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배낭을 내던지고 욕실로 직행. 지금이 7시 반이니까 한국은 지금 새벽 1시 반. 쿨쿨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긴장된 여행 첫날의 기분 때문인지 피곤하지 않다. 시원하게 씻고나오니 배가 무척이나 고파졌다. 내일밤 괴레메로 가는 버스표도 예약할 겸 호텔을 나섰는데 때마침 쏟아지는 비. 아아, 하필이면 비람.
할 수 없이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가 저녁을 먼저 먹기로 한다. 노란 벽이 귀여운 식당. 구렛나루와 수염을 기른 매니저가 과도한 친절로 나를 맞이한다. 옆자리에는 스페인에서 온 커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중 여자쪽이 내 얼굴이 맘에 든다며 사진을 찍어갔다. 참 신기한 경험일세.

터키에 왔으니 우선 케밥. 모듬 케밥을 주문하고, 또 터키에 왔으니 에페스 맥주를 주문했다. 푸짐한 한 상이다. 음식따위 절대 가리지 않는 고마운 입이지만만 터키 음식은 입에 유난히 잘 맞는다. 구운 토마토니 피망이니 양고기니 너무 좋다.
혼자 식사하는 것이 맘에 걸렸는지 매니저가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본다. 역시 6종세트 포함. 버스표를 예약하러 갈거라니까 지금은 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알려주면서 내일 표 예약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단다. 아, 이 사람도 작업중이시군요. 나이가 몇이냐길래 스물일곱이라고 했는데 자기는 스물 여덟이라고 반가워한다. 에엣! 거짓말! 적어도 서른 여덟은 먹어보이는구만.


- 터키의 에페스 맥주. 맛나다. 며칠 후에는 이곳 에페스에도 가게되지요 -


- 노란 레스토랑 -

여행 첫날, 빗소리를 들으며 맥주 마시는 기분도 좋구나.
아까 그 느끼 매니저가 서비스로 터키쉬 커피와 냅킨으로 만든 꽃을 가져다주었다. 좀 고전적이지만 기분나쁘지않은 작업 방법이네. 터키쉬 커피는 진하고 달고 가루가 입에 남아서 좀 텁텁했다. 냅킨 꽃은 서툴렀지만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가서 친구들한테 알려줘야지. 냅킨으로 만든 꽃, 작업용으로 효과있더라고.


- 터키쉬 커피, 어설픈 냅킨 꽃 -

술기운이 올라 슬슬 졸려온다. 노란 레스토랑에 안녕을 고한다. 내일 꼭 다시 들러달라는 신신당부. 대충 웃으며 손을 흔들고 빗속을 달려 숙소로 향했다. 구멍가게에 들러 물도 한통 사고 방에 돌아오니 하루가 길었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하긴, 오늘 하루는 30시간이었으니까.

by 니야 | 2005/08/21 00:02 | 지구정복자료수집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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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소마 at 2005/08/20 23:55
터키! 여행이라...(머엉)
우선 잘 갔다오셔서 다행입니다라는 안부 인사부터. (^^)
일때문에 바쁘시겠지만, 자주 올려주세요.
가고 싶어서 모니터 북북 긁으며 몸 비비 꼬고 눈물 줄줄 흘리는 가여운 중생하나 구해주시는 셈치시구요. 헤헤~
Commented by 푸리 at 2005/08/21 00:02
레스토랑이 정말 귀엽고 예쁜데요! 특히 노란 벽이요.
다음날 레스토랑에 다시 들렸나요? 매니저의 작업 방법이 귀여운데요. ^^;
다음이야기가 궁금궁금.

그런데, 오늘 푹 쉬셨나요? 여독은 좀 풀리셨나 궁금해서요. ^^
그러고보니, 덧글로 궁금한 것만 죄다 썼군요. -_-;;;
Commented by simplife at 2005/08/21 00:20
라이브로 듣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글로 보니 또 나름의 재미가 새롭네요~ ^---^
Commented by sooe at 2005/08/21 00:45
애들이 그러던데..남자가 찝쩍거릴때..
어디서 왔니..이러면..북한.
우리집 즐 잘사는데..나 김정일이랑 친하다.
이렇게 말하면..다들 멀어져 간다고 하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에 여행 할 때 치근 거리는 말이나 낙타 중간과 남자가 있다면..
이 방법을..ㅋㅋ
Commented by 좀비君 at 2005/08/21 06:50
웃, 냅킨으로 꽃 접는 방법 알아봐야겠군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5/08/21 11:10
서양남자들이 동양여자, 특히 한국여자들을 좋아하긴 합니다.
터키의 경우는 역사적 이유로 더 친근함을 표시할 것 같군요.
저도 외국에 나가면 많은 여자들....이 아닌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는 답니다.
'I'm straight'라고 쓰인 티셔츠라도 입고 다녀야 될 것 같아요. OTL
Commented by 렉스 at 2005/08/21 13:28
인도 가신 분 이야기 들어보니 정말 청혼 몇번에 작업 몇번을 당했다고 하더군요=_=;
Commented by 달바람 at 2005/08/21 17:17
전차사진 보고 싶어요.
Commented by Nariel at 2005/08/21 20:22
난 가면 결혼했다고 할테여요 -_-;;
Commented by 시리우스 at 2005/08/22 00:13
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저 맥주는 왠지 꼭 한번 먹어보고싶네요.. 냅킨 꽃 잘만든건 정말 묘하게 예쁘더라구요~
Commented by saraswati at 2005/08/22 08:22
푸하하하 '낙타와 말의 중간형태로 생긴 당신' 사진 좀 찍어오지 그랬어요!
Commented by 니야 at 2005/08/22 10:55
소마 / 자주 올리려고 노력중이지만 회사가 태클을!
푸리 / 여독은 주말동안 잘 풀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simpllife / 후후후 고마워요 ^^
sooe / 음, 그 방법은 안써봤는데 담에 가면 해봐야지!
좀비君 / 간단합니다.
marlowe / 그럼 정말 당황스럽겠군요. 아는 분도 도미토리에서 옆자리 자는 남자한테 당할뻔 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렉스 / 적극적인 것일까나요;
달바람 / 찍은 줄 알았는데 뒤져보니 없;;;
Nariel / 해봤는데 그럼 왜 혼자왔냐고..소용없으요
시리우스 / 에페스 맥주 맛납니다.
saraswati / 사진찍을 정신이 없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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