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1월 29일
니야, 이집트 유람기 - 카이로, 애증의 카이로
조금 일찍 도착했다 싶은 인천공항은 온통 북새통이었다. 겨울방학이라 그런지 애들로 바글댔고, 카운터앞의 줄은 16시간이라는 앞으로의 기나긴 비행을 예고하듯 지리하니 길기만 했다. 40여분을 기다려 겨우 체크인. 창가쪽 좌석은 남아있을 리가 없고, 그나마 화장실에 가기 편한 복도쪽에 자리를 얻었다.
면세점을 둘러보며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문자를 날린다. '이시스신의 입김을 받아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돌아올테니, 다들 내 등뒤의 여행신에게 키스를 부탁합니다.'

[아자아자 화잇힝!]
두번째 타보는 국적기다. 그리고 내 돈으로 타본 첫 국적기다. 영어로 인사하지 않는 스튜어디스라니 어쩐지 눈에 설다. 약간 뒷쪽의 좌석. 옆으로 나란히 배낭여행객으로 보이는 세명의 여자애들이 탔다. 이집트로 간다면 어쩌면 카이로에서의 동행이 될지도 모른다. 단체 아저씨 아줌마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비행기는 두바이에서 잠깐 한시간을 쉬었다가 카이로로 가는 직항. 저녁식사로 비빔밥이 나오고 식사를 하면서 옆자리 여자애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보다 두살 어린 대학원생들. 귀엽고 발랄하여 좋은 동행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이집트에 관한 책을 읽다가 한숨 푸욱 자고 나면 두바이에서 내릴 때가 될 것이다. 나일강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깊은 잠과 선잠을 번갈아 가다가 어둡던 비행기에 불이 켜진다. 아침밥을 먹을 때가 되었다는 의미.
장기간 비행은 늘 '사육당한다' 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먹이고 재우고 화장실 갔다가, 다시 먹이고 재우고. 두번째 사육 식사는 다행히도 가벼운 죽이었다. 소화도 안되는데 잘 되었군.

[국적기가 좋은 이유]
어두컴컴한 새벽, 뻐근한 몸을 펴며 두바이 공항에 내린다. 작년 여름이후 두번째라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겨우 두번째이면서도 이런 아늑한 느낌을 주다니 어쩐지 우습지만, 익숙한 곳이 주는 안도감과 새로운 곳을 향하는 설렘이 뒤섞여 새로운 색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괜시리 어깨를 한번 주물러 주었다.
다시 40분 정도 기다려 다시 똑같은 비행기, 같은 좌석에 앉는다. 옆자리 여자애들에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건다. 어느 숙소에 묵을 예정인지,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다들 나보다 긴 여정이지만 대략의 이동루트는 같아 흔쾌히 카이로에서 같이 움직이기로 얘기가 통했다.
3시간 반을 더 날아가 비행기는 스르르르 부드럽게 카이로 공항에 내려앉았다. 이제까지 경험했던 착륙중에 가장 부드러웠다. 나이스 기장님.
낡은 터미널의 끕끕한 냄새가 풍겨오는 카이로 공항을 빠져나가 비자를 받는다. 아니 비자를 산다. 15달러를 내면 두장의 우표를 받는데, 침을 쓱쓱 발라 여권에 붙이면 이집트 비자 완성. 비자와 함께 100달러를 이집트 파운드로 환전하니 더러운 돈을 뭉치로 준다. 으앗, 여행해 본 나라중에 최악의 지폐다. 나달나달 꾸깃꾸깃.
패스포트 체크를 받고 한무더기의 한국인 배낭객들이 자연스레 뭉쳤다. 택시는 너무 비싸니 시내까지 버스를 타야하는데 도대체가 버스 정류장 표시도, 영어 안내판도 아무것도 없다. 겨우 묻고 또 묻고 헤매고 한참을 헤매어 이집트 현지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 곳을 발견. 표지판도 아무것도 없고 그저 암묵적인 동의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버스가 섭니다' 라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단돈 400원]
우왕좌왕한 끝에 버스를 잡아탄다. 2파운드 + 커다란 배낭을 태우는 값으로 1파운드. 역시나 마찬가지로 끕끕한 냄새가 나는 버스는 한참을 달린다. 공항에서 멀어질 수록 많아지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꽂힌다. 여행지 어디서나 느끼는 시선이지만 유난히 집요하다.
숙소가 밀집해있는 미단 타흐리르로 가야하지만, 바이람 - 이슬람의 설날 - 기간이 얼마 안남았기에 우선 기차표부터 끊기로 하여 람세스 기차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불어닥치는 매연의 폭풍과 경적의 소용돌이. 귀가 아프고 코가 매웠다.
순간적으로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이 양쪽 귀를 관통한다. 게다가 더욱 문제는 길을 건널 수가 없다는 것. 다들 차들과 사람이 한나로 엉켜 길을 잘도 건너는데 횡단보도는 무용지물이고 용기내어 차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 밖에 없다. 몇번을 우물쭈물 거리다 10분만에 길 건너는 것에 성공했다. 벌써 기진맥진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람세스역으로 가는 그 짧은 100미터의 거리를 걷는 동안 스무명 남짓의 남자들이 얼굴을 들이대고 '알로' 를 외쳐댔고, 지나가는 애들과 사내들은 모두 '재패니~즈' 를 수근거렸으며 대여섯명의 남자들이 일부러 몸을 부딪히며 팔을 훑고 지나갔다.
오마이 지쟈쓰! 뭐가 이따위야! 비행기에서 만난 일행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더욱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람세스 역안으로 들어가 한숨을 돌리고 빨간 베레모의 경찰에게 티켓오피스를 물었다. 이미 1등석 2등석의 모든 표가 매진이라는 얘기를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전해들은 터라 우리는 주저않고 비싸디 비싸 숨넘어가는 왜건리 오피스로 향했다.
카이로 - 아스완, 룩소르 - 카이로의 왕복표가 106달러다. 엄청나다. 그치만 솔직히 이 가격에 왜건리를 탈 수 있는 나라도 이집트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아침식사 저녁식사 다 주고, 침대에 누워잘 수 있고, 세면대도 있다잖아.
그러나 좋다는 기차 시설과는 달리 티켓 시스템은 정말 상상외였다. 다들 수기로 티켓을 적고, 좌석을 확인한다. 그리고 티켓을 끊는 창구와 돈을 수납하는 창구가 따로있어서 왜건리 티켓 예약하는데만 무려 40분이 소요되었다. 그래, 이곳은 이집트였지. 끊임없는 가격 흥정 실갱이와 웃으면서 참아내는 여행자의 인내심이 필요한 곳.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 상황은 그보다 좀 더 많은 인내심과 끈질김이 필요한 듯 하다.

[40분만에 획득한, Sleeping Train Ticket]
겨우겨우 표를 끊고 숙소를 잡으로 미단 타흐리르로 향한다. 다행히 람세스 역에서 그곳까지는 지하철이 있다. 책에는 0.5리라로 써있었건만 그새 표값이 올랐나보다. 0.75 리라를 내고 표를 받는다. 지하철의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같다. 여기서도 끊임없는 시선에 시달려 도무지 방향을 묻고싶은 생각이 안든다. 그나마 빨간 베레모의 경찰들이 믿음직스럽다.
커다란 배낭을 맨 검은 머리의 동양 여인네 넷이서 지하철에 오르니 온통 우리에게 쏠리는 시선. 그나마 넷이라 그 시선들에 의연하게 대처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그때 느껴지는 치한의 손. 엉덩이쪽에 은근슬쩍 들이대는 손의 주인공을 째려봤을 때, 그 느글그글한 웃음이란! 게다가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잖아! 이런 &*%$##!
Don't Do That 하고 무섭게 말하니 움찔해서 물러나긴 한다. 아아, 카이로에 온지 단 몇시간만에 카이로가 싫어지고 있다.
타흐리르에 내려 찾은 숙소는 싸고 한국과 일본 여행객들이 많기로 소문난 'Sun hotel' 이었다. 덜컹거리는 무서운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긴 얼굴의 이집션이 반겨준다. 터키에서 만난 말-낙타 청년과 비슷하게 생겼구먼.
숙소는 생각보다 더러웠다. 좋은 호텔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역시나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뭐 배낭여행자들은 침대와 화장실만 쓸 수 있으면 오케이 아니던가.
싱글룸을 잡아 짐을 푼다. 짐을 풀면서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해보니 아차 실수다 싶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일모레 사막으로 갔다가 돌아와 밤차를 타야하는데, 아스완으로 떠나는 밤 왜건리의 기차시각이 너무 빠른 것이다. 7시 40분에 기차가 떠나니 적어도 7시까지는 돌아와야 하는데, 바하리야 오아시스에서 투어가 끝나고 돌아오면 아무리 빨라도 밤 8시다.
두번째 오마이 지쟈쓰! 으아앗!

[Sun hotel. 더럽고 어둡고 벼룩이 있을 것만 같은 방]
에라 모르겠다. 이제 Plan B를 발동해야 할 때. Plan B =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어차피 여행 계획이란 이렇게 저렇게 변하기 마련이니까.
옆방의 동행들에게는 1시까지 돌아오겠다 얘기하고 우선은 학생증을 만들러 나갔다. 이집트에서 학생증은 매우 유용한데 비싼 유적지나 기차표가 거의 50% 할인이 된다. 게다가 돈과 사진만 주면 확인절차 없이 만들어주니 단연코 필수품.
택시를 잡아 실갱이를 벌이고 - 5리라면 되는 거리를 20리라를 부른다. 그때는 화가 났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이건 양호한 것이더라 - 학생증 사무소에서 70리라를 내고 학생증을 만든다. 뭐야 5분도 안걸리누만.
숙소로 돌아오니 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은 점심을 먹자. 그리고 오늘은 첫 적응의 날이니 가까운 이집션 뮤지엄을 둘러보는 것으로 느긋하게 보내기로 한다.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felfela' 라는 유명한 식당을 찾아냈다. 좀 비싼데 꽤나 유명인사들도 많이 찾은 이집트의 대표적 고급 레스토랑이다. 첫 음식이니 좋은거 먹어보지 뭐.
낯선 메뉴들의 사이를 헤집고 이것저것 골라 먹는다. 나는 토마토 소스의 미트볼과 밥. 토마토향과 알 수 없는 향신료가 강한 맛이었는데 그냥저냥 먹을만 했다. 근데, 고급 식당치고는 별로네.

[분위기는 굿굿]

[이게 이집트에서의 첫 식사였어요]
배도 채웠겠다 이제는 박물관으로 가실까요. 세계 최대의 유물들이 모여있는 이 곳. 카메라는 모두 두고 들어가야 한다. 가방검사도 철저하다. 책에 써있는 것보다 입장료가 다들 많이 올랐다. 그래도 성인요금의 반가격으로 티켓을 끊으니 기분 좋구먼요.
박물관에 첫발을 디뎠을 때, 그 엄청난 인파에 한번 놀라고 더욱 놀란 것은 여기가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그냥 거대한 '유물의 창고' 같았다는 사실이다. 몇천년전 이집트 문화의 소산인 엄청난 유물들이 너무너무 많다보니 그냥 그저...널/려/있/다. 다들 만져보고 난리도 아니다. 게다가 설명도 없어. 다 떨어져나가는 갱지에 쓴 설명이 붙어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없음 그저 추측으로 넘어갈 뿐이다.
비행기에서 읽은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거론된 이케나텐 왕의 석상도 구석탱이에 아무런 설명없이 그냥 덩그러니 서있을 뿐. 미리 공부하고 왔길 다행이지, 이 엄청난 것들을 그냥 지나칠 뻔했잖아!
그렇게 몇천년에 걸친 이집트 유물의 바다에서 헤집고 다니다가 2층으로 올라가 드디어 투탕카멘 전시실에 입실. 여기는 그나마 박물관스럽다. 번쩍이는 투탕카멘 소년왕의 마스크. 몇번이고 사진이며 TV에서 봐와서인지 실제 그 마스크는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이걸 정말 내가 실제로 보고있단 말인가. 가슴이 뿌듯하다.
그리고 이집트 하면 미라. 왕들의 미라를 전시해 놓은 전시실은 또 따로 티켓을 사야한다. 볼까말까 조금 고민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미라를 보지 않을 수는 없어 따로 티켓을 끊어 미라 전시실에 들어간다. 여기는 12구의 왕과 왕비들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는데 미라가 이렇게 생생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내 뒷머리가 서늘해졌다.
으시시한 첫느낌은 이내 사라져버리고 피부조직, 머리카락, 손톱까지 남아 생생한 미라를 마주하고 있자니 마치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듯 싶다.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위로 모으고 헝겊으로 둘러쌓인 채 몇천년을 누워 자고 있는 람세스 왕의 미라. 피부의 주름까지 그대로 남아있어 눈을 번쩍 뜨고 호령을 한다해도 그닥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며 이건 무슨 의미일까, 저건 왜 만들어졌을까 돌아다니니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즐거웠다. 박물관이 이렇게 즐거웠던 것은 정말 오랫만이다.

[거대한 유물의 창고]

[맨 위가 버스티켓, 왼쪽이 박물관, 오른쪽이 미라관 티켓]
몇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돌아와 숙소 카운터에 사막투어에서 일찍 돌아오는 법을 물었더니 한 사내를 소개시켜 주었다. 선호텔에서 일하며 동시에 투어를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호삼 라미. 이내 이런저런 투어를 권하면서 얘기를 시작하는데, 이곳저곳 전화를 해보더니 당장 내일 아침 바하리야로 떠나는 2박 3일 사막투어에 조인하면 아스완으로 떠나는 6일날 오후 3시까지 카이로로 돌아올 수 있게 어레인지를 해주겠단다.
원래 사막투어로 1박 2일을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되면 카이로에서 하루를 포기해야한다. 그러나 또 그 비싼 왜건리를 놓칠 수도 없고, 게다가 카이로가 싫다. 비용을 따져보니 직접 사막으로 가서 투어를 찾는 것보다 30%정도 비싼 가격. 딱 10분을 고민하다 뭐 까짓것 시간절약도 되고, 아스완으로 무사히 가는 차원에서 OK 사인을 보냈다.
Plan B. 갑작스레 내일 아침 사막으로 떠나게 되어버렸다. 덕분에 기자의 피라밋과의 조우는 제일 마지막날로 미뤄지게 되는군.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스핑크스.
그렇게 카이로에서 첫날을 함께보낸 세명의 귀여운 여자애들, 명희 일행과는 바이바이구나. 같이 저녁으로 시원한 딸기와 오렌지주스를 들이켰다. 컵을 깨끗이 닦아 주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맛은 좋다. - 차라리 태국처럼 비닐봉지에 담아주면 좋으련만, 후후.

[숙소건물 1층의 옷가게. 아스트랄한 마네킹. 헤드윅의 아우라]
잘자라,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를 함께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 벼룩이 있을 것 같은 시트 대신 침낭을 펴고 그 안에 쏘옥 들어가 잠을 청한다. 7시간이 더 붙은 31시간의 첫 여행날이 지고있다.
굿나잇.
면세점을 둘러보며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문자를 날린다. '이시스신의 입김을 받아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돌아올테니, 다들 내 등뒤의 여행신에게 키스를 부탁합니다.'

[아자아자 화잇힝!]
두번째 타보는 국적기다. 그리고 내 돈으로 타본 첫 국적기다. 영어로 인사하지 않는 스튜어디스라니 어쩐지 눈에 설다. 약간 뒷쪽의 좌석. 옆으로 나란히 배낭여행객으로 보이는 세명의 여자애들이 탔다. 이집트로 간다면 어쩌면 카이로에서의 동행이 될지도 모른다. 단체 아저씨 아줌마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비행기는 두바이에서 잠깐 한시간을 쉬었다가 카이로로 가는 직항. 저녁식사로 비빔밥이 나오고 식사를 하면서 옆자리 여자애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보다 두살 어린 대학원생들. 귀엽고 발랄하여 좋은 동행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이집트에 관한 책을 읽다가 한숨 푸욱 자고 나면 두바이에서 내릴 때가 될 것이다. 나일강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깊은 잠과 선잠을 번갈아 가다가 어둡던 비행기에 불이 켜진다. 아침밥을 먹을 때가 되었다는 의미.
장기간 비행은 늘 '사육당한다' 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먹이고 재우고 화장실 갔다가, 다시 먹이고 재우고. 두번째 사육 식사는 다행히도 가벼운 죽이었다. 소화도 안되는데 잘 되었군.

[국적기가 좋은 이유]
어두컴컴한 새벽, 뻐근한 몸을 펴며 두바이 공항에 내린다. 작년 여름이후 두번째라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겨우 두번째이면서도 이런 아늑한 느낌을 주다니 어쩐지 우습지만, 익숙한 곳이 주는 안도감과 새로운 곳을 향하는 설렘이 뒤섞여 새로운 색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괜시리 어깨를 한번 주물러 주었다.
다시 40분 정도 기다려 다시 똑같은 비행기, 같은 좌석에 앉는다. 옆자리 여자애들에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건다. 어느 숙소에 묵을 예정인지,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다들 나보다 긴 여정이지만 대략의 이동루트는 같아 흔쾌히 카이로에서 같이 움직이기로 얘기가 통했다.
3시간 반을 더 날아가 비행기는 스르르르 부드럽게 카이로 공항에 내려앉았다. 이제까지 경험했던 착륙중에 가장 부드러웠다. 나이스 기장님.
낡은 터미널의 끕끕한 냄새가 풍겨오는 카이로 공항을 빠져나가 비자를 받는다. 아니 비자를 산다. 15달러를 내면 두장의 우표를 받는데, 침을 쓱쓱 발라 여권에 붙이면 이집트 비자 완성. 비자와 함께 100달러를 이집트 파운드로 환전하니 더러운 돈을 뭉치로 준다. 으앗, 여행해 본 나라중에 최악의 지폐다. 나달나달 꾸깃꾸깃.
패스포트 체크를 받고 한무더기의 한국인 배낭객들이 자연스레 뭉쳤다. 택시는 너무 비싸니 시내까지 버스를 타야하는데 도대체가 버스 정류장 표시도, 영어 안내판도 아무것도 없다. 겨우 묻고 또 묻고 헤매고 한참을 헤매어 이집트 현지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 곳을 발견. 표지판도 아무것도 없고 그저 암묵적인 동의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버스가 섭니다' 라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단돈 400원]
우왕좌왕한 끝에 버스를 잡아탄다. 2파운드 + 커다란 배낭을 태우는 값으로 1파운드. 역시나 마찬가지로 끕끕한 냄새가 나는 버스는 한참을 달린다. 공항에서 멀어질 수록 많아지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꽂힌다. 여행지 어디서나 느끼는 시선이지만 유난히 집요하다.
숙소가 밀집해있는 미단 타흐리르로 가야하지만, 바이람 - 이슬람의 설날 - 기간이 얼마 안남았기에 우선 기차표부터 끊기로 하여 람세스 기차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불어닥치는 매연의 폭풍과 경적의 소용돌이. 귀가 아프고 코가 매웠다.
순간적으로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이 양쪽 귀를 관통한다. 게다가 더욱 문제는 길을 건널 수가 없다는 것. 다들 차들과 사람이 한나로 엉켜 길을 잘도 건너는데 횡단보도는 무용지물이고 용기내어 차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 밖에 없다. 몇번을 우물쭈물 거리다 10분만에 길 건너는 것에 성공했다. 벌써 기진맥진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람세스역으로 가는 그 짧은 100미터의 거리를 걷는 동안 스무명 남짓의 남자들이 얼굴을 들이대고 '알로' 를 외쳐댔고, 지나가는 애들과 사내들은 모두 '재패니~즈' 를 수근거렸으며 대여섯명의 남자들이 일부러 몸을 부딪히며 팔을 훑고 지나갔다.
오마이 지쟈쓰! 뭐가 이따위야! 비행기에서 만난 일행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더욱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람세스 역안으로 들어가 한숨을 돌리고 빨간 베레모의 경찰에게 티켓오피스를 물었다. 이미 1등석 2등석의 모든 표가 매진이라는 얘기를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전해들은 터라 우리는 주저않고 비싸디 비싸 숨넘어가는 왜건리 오피스로 향했다.
카이로 - 아스완, 룩소르 - 카이로의 왕복표가 106달러다. 엄청나다. 그치만 솔직히 이 가격에 왜건리를 탈 수 있는 나라도 이집트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아침식사 저녁식사 다 주고, 침대에 누워잘 수 있고, 세면대도 있다잖아.
그러나 좋다는 기차 시설과는 달리 티켓 시스템은 정말 상상외였다. 다들 수기로 티켓을 적고, 좌석을 확인한다. 그리고 티켓을 끊는 창구와 돈을 수납하는 창구가 따로있어서 왜건리 티켓 예약하는데만 무려 40분이 소요되었다. 그래, 이곳은 이집트였지. 끊임없는 가격 흥정 실갱이와 웃으면서 참아내는 여행자의 인내심이 필요한 곳.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 상황은 그보다 좀 더 많은 인내심과 끈질김이 필요한 듯 하다.

[40분만에 획득한, Sleeping Train Ticket]
겨우겨우 표를 끊고 숙소를 잡으로 미단 타흐리르로 향한다. 다행히 람세스 역에서 그곳까지는 지하철이 있다. 책에는 0.5리라로 써있었건만 그새 표값이 올랐나보다. 0.75 리라를 내고 표를 받는다. 지하철의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같다. 여기서도 끊임없는 시선에 시달려 도무지 방향을 묻고싶은 생각이 안든다. 그나마 빨간 베레모의 경찰들이 믿음직스럽다.
커다란 배낭을 맨 검은 머리의 동양 여인네 넷이서 지하철에 오르니 온통 우리에게 쏠리는 시선. 그나마 넷이라 그 시선들에 의연하게 대처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그때 느껴지는 치한의 손. 엉덩이쪽에 은근슬쩍 들이대는 손의 주인공을 째려봤을 때, 그 느글그글한 웃음이란! 게다가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잖아! 이런 &*%$##!
Don't Do That 하고 무섭게 말하니 움찔해서 물러나긴 한다. 아아, 카이로에 온지 단 몇시간만에 카이로가 싫어지고 있다.
타흐리르에 내려 찾은 숙소는 싸고 한국과 일본 여행객들이 많기로 소문난 'Sun hotel' 이었다. 덜컹거리는 무서운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긴 얼굴의 이집션이 반겨준다. 터키에서 만난 말-낙타 청년과 비슷하게 생겼구먼.
숙소는 생각보다 더러웠다. 좋은 호텔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역시나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뭐 배낭여행자들은 침대와 화장실만 쓸 수 있으면 오케이 아니던가.
싱글룸을 잡아 짐을 푼다. 짐을 풀면서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해보니 아차 실수다 싶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일모레 사막으로 갔다가 돌아와 밤차를 타야하는데, 아스완으로 떠나는 밤 왜건리의 기차시각이 너무 빠른 것이다. 7시 40분에 기차가 떠나니 적어도 7시까지는 돌아와야 하는데, 바하리야 오아시스에서 투어가 끝나고 돌아오면 아무리 빨라도 밤 8시다.
두번째 오마이 지쟈쓰! 으아앗!

[Sun hotel. 더럽고 어둡고 벼룩이 있을 것만 같은 방]
에라 모르겠다. 이제 Plan B를 발동해야 할 때. Plan B =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어차피 여행 계획이란 이렇게 저렇게 변하기 마련이니까.
옆방의 동행들에게는 1시까지 돌아오겠다 얘기하고 우선은 학생증을 만들러 나갔다. 이집트에서 학생증은 매우 유용한데 비싼 유적지나 기차표가 거의 50% 할인이 된다. 게다가 돈과 사진만 주면 확인절차 없이 만들어주니 단연코 필수품.
택시를 잡아 실갱이를 벌이고 - 5리라면 되는 거리를 20리라를 부른다. 그때는 화가 났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이건 양호한 것이더라 - 학생증 사무소에서 70리라를 내고 학생증을 만든다. 뭐야 5분도 안걸리누만.
숙소로 돌아오니 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은 점심을 먹자. 그리고 오늘은 첫 적응의 날이니 가까운 이집션 뮤지엄을 둘러보는 것으로 느긋하게 보내기로 한다.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felfela' 라는 유명한 식당을 찾아냈다. 좀 비싼데 꽤나 유명인사들도 많이 찾은 이집트의 대표적 고급 레스토랑이다. 첫 음식이니 좋은거 먹어보지 뭐.
낯선 메뉴들의 사이를 헤집고 이것저것 골라 먹는다. 나는 토마토 소스의 미트볼과 밥. 토마토향과 알 수 없는 향신료가 강한 맛이었는데 그냥저냥 먹을만 했다. 근데, 고급 식당치고는 별로네.

[분위기는 굿굿]

[이게 이집트에서의 첫 식사였어요]
배도 채웠겠다 이제는 박물관으로 가실까요. 세계 최대의 유물들이 모여있는 이 곳. 카메라는 모두 두고 들어가야 한다. 가방검사도 철저하다. 책에 써있는 것보다 입장료가 다들 많이 올랐다. 그래도 성인요금의 반가격으로 티켓을 끊으니 기분 좋구먼요.
박물관에 첫발을 디뎠을 때, 그 엄청난 인파에 한번 놀라고 더욱 놀란 것은 여기가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그냥 거대한 '유물의 창고' 같았다는 사실이다. 몇천년전 이집트 문화의 소산인 엄청난 유물들이 너무너무 많다보니 그냥 그저...널/려/있/다. 다들 만져보고 난리도 아니다. 게다가 설명도 없어. 다 떨어져나가는 갱지에 쓴 설명이 붙어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없음 그저 추측으로 넘어갈 뿐이다.
비행기에서 읽은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거론된 이케나텐 왕의 석상도 구석탱이에 아무런 설명없이 그냥 덩그러니 서있을 뿐. 미리 공부하고 왔길 다행이지, 이 엄청난 것들을 그냥 지나칠 뻔했잖아!
그렇게 몇천년에 걸친 이집트 유물의 바다에서 헤집고 다니다가 2층으로 올라가 드디어 투탕카멘 전시실에 입실. 여기는 그나마 박물관스럽다. 번쩍이는 투탕카멘 소년왕의 마스크. 몇번이고 사진이며 TV에서 봐와서인지 실제 그 마스크는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이걸 정말 내가 실제로 보고있단 말인가. 가슴이 뿌듯하다.
그리고 이집트 하면 미라. 왕들의 미라를 전시해 놓은 전시실은 또 따로 티켓을 사야한다. 볼까말까 조금 고민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미라를 보지 않을 수는 없어 따로 티켓을 끊어 미라 전시실에 들어간다. 여기는 12구의 왕과 왕비들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는데 미라가 이렇게 생생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내 뒷머리가 서늘해졌다.
으시시한 첫느낌은 이내 사라져버리고 피부조직, 머리카락, 손톱까지 남아 생생한 미라를 마주하고 있자니 마치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듯 싶다.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위로 모으고 헝겊으로 둘러쌓인 채 몇천년을 누워 자고 있는 람세스 왕의 미라. 피부의 주름까지 그대로 남아있어 눈을 번쩍 뜨고 호령을 한다해도 그닥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며 이건 무슨 의미일까, 저건 왜 만들어졌을까 돌아다니니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즐거웠다. 박물관이 이렇게 즐거웠던 것은 정말 오랫만이다.

[거대한 유물의 창고]

[맨 위가 버스티켓, 왼쪽이 박물관, 오른쪽이 미라관 티켓]
몇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돌아와 숙소 카운터에 사막투어에서 일찍 돌아오는 법을 물었더니 한 사내를 소개시켜 주었다. 선호텔에서 일하며 동시에 투어를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호삼 라미. 이내 이런저런 투어를 권하면서 얘기를 시작하는데, 이곳저곳 전화를 해보더니 당장 내일 아침 바하리야로 떠나는 2박 3일 사막투어에 조인하면 아스완으로 떠나는 6일날 오후 3시까지 카이로로 돌아올 수 있게 어레인지를 해주겠단다.
원래 사막투어로 1박 2일을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되면 카이로에서 하루를 포기해야한다. 그러나 또 그 비싼 왜건리를 놓칠 수도 없고, 게다가 카이로가 싫다. 비용을 따져보니 직접 사막으로 가서 투어를 찾는 것보다 30%정도 비싼 가격. 딱 10분을 고민하다 뭐 까짓것 시간절약도 되고, 아스완으로 무사히 가는 차원에서 OK 사인을 보냈다.
Plan B. 갑작스레 내일 아침 사막으로 떠나게 되어버렸다. 덕분에 기자의 피라밋과의 조우는 제일 마지막날로 미뤄지게 되는군.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스핑크스.
그렇게 카이로에서 첫날을 함께보낸 세명의 귀여운 여자애들, 명희 일행과는 바이바이구나. 같이 저녁으로 시원한 딸기와 오렌지주스를 들이켰다. 컵을 깨끗이 닦아 주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맛은 좋다. - 차라리 태국처럼 비닐봉지에 담아주면 좋으련만, 후후.

[숙소건물 1층의 옷가게. 아스트랄한 마네킹. 헤드윅의 아우라]
잘자라,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를 함께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 벼룩이 있을 것 같은 시트 대신 침낭을 펴고 그 안에 쏘옥 들어가 잠을 청한다. 7시간이 더 붙은 31시간의 첫 여행날이 지고있다.
굿나잇.
# by | 2006/01/29 00:01 | 지구정복자료수집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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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들이 널려있다니 말만 들어도 부러워요.
그런데그런데 학생이셨군요. 후후후;
저 옷 잠옷 맞죠? 잠옷이길..덜덜덜
메르키제데크 / 네, 이미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쏘이 / 응, 잠옷이란다;;
시리우스 / 네, 필히 공부하고 가셔야합니다.
카제 / 네, 반갑습니다
아직은 뭔가 이렇다 할 게 없네요. 앞으로를 기대해봅니다. +_+
분명히 같은 지폐인데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이 제각각이라죠. ㅎㅎ
100파운드 지폐가 어디 있을 텐데.. 가만보자.... ㅡㅡ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