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16일
[mi-ring]독립 혹은 자립 - 자긍심
나는 지금 현재 독립하여 살고있다. 서류상으로도 명백하여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보면 단 하나의 이름만이 나올 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독립' 하였냐 라고 물으면 그게 상황에 의해 부모곁을 떠나 하숙생활을 시작했던 열아홉부터인지, 직장을 얻고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던 스물세살부터인지 좀 헷갈린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질문에 혼자 살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인 열아홉부터고, 독립한 것은 경제력을 가지게 된 스물세살부터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진 '독립 혹은 자립' 의 기준은 스스로의 생활을 책임지게 된 순간부터다. 그런 의미로 친한 친구 하나는 나에게 '생활인'이라는 호칭을 쓴다. 생활인. 스스로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 쉽고도 뿌듯한 단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홀로 살고 싶어 하는 꿈많은 소녀들을 냉정하게 다그친다. '정말 좋겠어요. 부모님 간섭 안받고 혼자 살잖아요. 저도 혼자 살고 싶어요.' 라고 눈망울을 반짝이면 이야기하는 그들의 반수 이상은 아마 '혼자사는 독신 여성' 의 화려한 이미지를 머리속에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실제 나도 독립전에 그랬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깔끔하고 넓은 오피스텔, 아침은 은은한 향의 커피와 토스트일 것이고, 노트북과 책들이 놓여있는 책상과 음질 좋은 오디오와 아기자기한 소품들. 드라마에서 늘 '독신여성'의 생활공간으로 나오는 광고차원의 뽀샤시 이미지들이 날아다니고 있지는 않을까. 근데, 그렇게 사는데 드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건데?
그래, 솔직히 대답하자. 응 독립해서 혼자 사니까 좋아요. 근데 늘 월세내는 날이 되면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한숨만 푹푹 쉬죠. 역시 부동산이 돈을 번다 생각하면서. 그 낡고 코딱지만한 방이 왜 이리 비싼지. 전기세 가스비 내는 것 깜빡해서 '공급중지예고장' 이 붙어있는 현관문을 바라보며 가슴 떨려해요. 청소가 취미가 아닌 이상 늘 어질러진 책상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죠. 커피와 토스트? 성욕감퇴 콘프레이크 먹기에도 시간 없는걸요. 냉장고에 물이나 채워넣으면 다행이지. 중국집도 짜장면 하나 시켜면 싫어해요. 게다가 배달맨이 무섭기도 하고. 빨래는 또 왜 이리 많이 쌓이는 거야. 화장실 휴지 사다놓는 것 깜빡해서 난감한 경우는 정말 죽고싶다구요. 치약하고 샴푸는 왜 이리 자주 떨어지는건데. 맘먹고 대형마트에라도 가는 날이면 생필품이라고 이름붙은 것들이 왜 이리 비싸? 형광등 나가고, 변기 막히고, 냉장고 웅웅거리고 그거 다 뚝딱거리며 혼자 고쳐요. 너무너무 아픈데 아무도 없어요. 혼자 담요를 뒤집어쓰고 죽만드는 기분 생각해봤어요? 통장 잔고 '0' 의 숫자를 보면 정말 죽고싶죠. 월급날은 일주일 남았는데 뭐먹고 사나 싶어 하늘이 노래요. 의도치않은 다이어트를 해야하죠. 장마철의 반지하방은 정말이지 지옥이에요. 벽마다 곰팡이 꽃이 전염병처럼 퍼진다구요. 간혹은 방에 물이 차기도 하고.
이거 다 내 얘기에요. 아름다운 독립.
부모님에게 손벌려 생활비 타가면서 독립한다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독립 생활이 마냥 자유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꿈꾸는 사람들을 나는 가끔 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독립으로 얻을 수 있는 것. 그건 확인과 확신이다. 구질구질하든 풍족하지 못하든 혼자 살아갈 능력과 그 '홀로있음'을 버틸 수 있는 정신의 소유자라는 확인과 그에 따라오는 자긍심.
위의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구르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 스스로도 제대로 살 수 있음, 그리하여 나는 온전한 개체이며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고 누구의 간섭과 강요를 받지 않으며 그 스스로 가치를 갖는다. 그것이 내가 귀가하고 싶은 시각에 귀가할 수 있는 자유,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자유,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 즐거움,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기쁨, 벗고 돌아다닐 수 있는 해방감에 우선한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