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27일
후두 신경통
"후두 신경통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았나요? 무언가 신경을 압박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혈관팽창으로 인한 신경통 같습니다. 혈관이 부풀어서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죠. 우선 일반적인 신경통 치료를 받아봅시다."
빠르면서도 푸근하게 말하는 의사의 음성이 '뭐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오' 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약간이나마 안심했다. 이렇게 아파서 병원을 찾은 것은 치과를 제외하면 처음이기에 '혹시 뇌종양?' 하는 신파극 주인공적 생각을 약간이나마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드라마에서 워낙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잖수.
하아 다행이네, 그래도 죽을 병은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또 한번 찌르르르르 송곳이 머리를 쑤시고 지나간다. 고통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커텐이 드리워진 주사실로 들어가 눕는다. 병원은 정말 오랫만이로고. 이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보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엎드려 누웠다. 병원 침대에서는 약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손을 잡고 갔던 소아과 병원의 침대 냄새도 이러했지. 그 무뚝뚝하고 무서운 표정의 선생님은 내가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다며 이뻐했더랬다. 솔직히 그 선생님 얼굴이 너무 무서워서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어요.
쾌활한 표정의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똑바로 누우라고 한다. 혈관에 근육 이완주사를 맞을 거란다. 노란 고무줄로 팔을 묶고 팔을 톡톡 두드려 혈관을 찾는다.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매년 건강검진때도 내 혈관은 어디론가 숨어버려 세네번 바늘을 찔러대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작은 유리병에 든 노란 액체가 긴 관을 타고 내 팔로 스며든다. 링거주사를 맞기는 평생 처음이다. 새삼 나는 참 건강하게도 살아왔다 싶다.
그렇게 십분쯤 누웠을까,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아직도 아프냐고 묻는다. 네, 아직도 아픕니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머리에서 매미가 우네요.
모로 누우라고 하더니 이리저리 내 머리를 만져댄다. 특히나 아픈 부분을 가만히 누르더니 얘기한다. 조금 따끔할겁니다. 그리고 두피를 뚫고 찌르는 바늘. 따끔한 것을 넘어서서 고통이었다. 머리에 직접 주사를 맞는 기분이란 참으로 묘하구나, 보이지도 않는 주사바늘을 상상하니 자연스레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었는데.
약이 퍼지면서 약간의 마취기운이 느껴진다. 만지면 너무나 아팠던 머리는 서서히 감각이 사라진다. 아직도 찌르르한 아픔은 있었지만 송곳이 바늘로 가늘어져 한결 나아진 기분이었다.
이대로 있으세요, 의사는 그 말을 남기고 다른 침대로 가버렸다. 나는 소독약 냄새를 맡으며 벽을 보고 누워있었다. 나무 벽 너머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깨결림과 허리통증을 호소한다. 참 나 원. 신경통이라니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나온다. 비가 오려나 신경통이 도지는구랴 영감. 내게 있어 신경통의 이미지는 그것일진데, 어찌 우습지 않을까.
내 머리속의 신경을 사정없이 누르고 있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부풀대로 부푼 혈관일까, 아니면 혈관을 타고 흘러다니다 뒷통수에 모여든 스물 여덟해의 침전물들일까.
그때 왜 그리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이루지 못한 그 사랑에 대한 미련, 믿음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던 그 재수없는 인간에 대한 증오, 앞날에 대한 여전한 불안감, 외로움 그리고 불균형한 식사.
아마 그런 것들의 찌꺼기일 것이다. 낮에는 꾸욱꾸욱 눌러 봉인하고, 깊은 밤의 꿈에서만 그 숨통을 풀어놓는 그 찌꺼기들. 완전히 없앨 자신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드러내 보이기도 싫은 그 초라한 찌꺼기들.
머리에 놓는 주사로 없앨 수 있다면 좋겠는데. 스스로 마음에 구멍을 내기 전에, 덜아프게 없앨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마 그것은 힘들겠지.
혈관이 더 부풀어 터지기 전에 꽁꽁 뭉친 찌꺼기들, 다 태워버려야겠다.
불씨를 지피려면 힘 꽤나 써야겠네. 응차. 스물아홉 통과의례로는 나쁘지 않아.
빠르면서도 푸근하게 말하는 의사의 음성이 '뭐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오' 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약간이나마 안심했다. 이렇게 아파서 병원을 찾은 것은 치과를 제외하면 처음이기에 '혹시 뇌종양?' 하는 신파극 주인공적 생각을 약간이나마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드라마에서 워낙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잖수.
하아 다행이네, 그래도 죽을 병은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또 한번 찌르르르르 송곳이 머리를 쑤시고 지나간다. 고통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커텐이 드리워진 주사실로 들어가 눕는다. 병원은 정말 오랫만이로고. 이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보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엎드려 누웠다. 병원 침대에서는 약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손을 잡고 갔던 소아과 병원의 침대 냄새도 이러했지. 그 무뚝뚝하고 무서운 표정의 선생님은 내가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다며 이뻐했더랬다. 솔직히 그 선생님 얼굴이 너무 무서워서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어요.
쾌활한 표정의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똑바로 누우라고 한다. 혈관에 근육 이완주사를 맞을 거란다. 노란 고무줄로 팔을 묶고 팔을 톡톡 두드려 혈관을 찾는다.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매년 건강검진때도 내 혈관은 어디론가 숨어버려 세네번 바늘을 찔러대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작은 유리병에 든 노란 액체가 긴 관을 타고 내 팔로 스며든다. 링거주사를 맞기는 평생 처음이다. 새삼 나는 참 건강하게도 살아왔다 싶다.
그렇게 십분쯤 누웠을까,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아직도 아프냐고 묻는다. 네, 아직도 아픕니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머리에서 매미가 우네요.
모로 누우라고 하더니 이리저리 내 머리를 만져댄다. 특히나 아픈 부분을 가만히 누르더니 얘기한다. 조금 따끔할겁니다. 그리고 두피를 뚫고 찌르는 바늘. 따끔한 것을 넘어서서 고통이었다. 머리에 직접 주사를 맞는 기분이란 참으로 묘하구나, 보이지도 않는 주사바늘을 상상하니 자연스레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었는데.
약이 퍼지면서 약간의 마취기운이 느껴진다. 만지면 너무나 아팠던 머리는 서서히 감각이 사라진다. 아직도 찌르르한 아픔은 있었지만 송곳이 바늘로 가늘어져 한결 나아진 기분이었다.
이대로 있으세요, 의사는 그 말을 남기고 다른 침대로 가버렸다. 나는 소독약 냄새를 맡으며 벽을 보고 누워있었다. 나무 벽 너머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깨결림과 허리통증을 호소한다. 참 나 원. 신경통이라니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나온다. 비가 오려나 신경통이 도지는구랴 영감. 내게 있어 신경통의 이미지는 그것일진데, 어찌 우습지 않을까.
내 머리속의 신경을 사정없이 누르고 있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부풀대로 부푼 혈관일까, 아니면 혈관을 타고 흘러다니다 뒷통수에 모여든 스물 여덟해의 침전물들일까.
그때 왜 그리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이루지 못한 그 사랑에 대한 미련, 믿음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던 그 재수없는 인간에 대한 증오, 앞날에 대한 여전한 불안감, 외로움 그리고 불균형한 식사.
아마 그런 것들의 찌꺼기일 것이다. 낮에는 꾸욱꾸욱 눌러 봉인하고, 깊은 밤의 꿈에서만 그 숨통을 풀어놓는 그 찌꺼기들. 완전히 없앨 자신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드러내 보이기도 싫은 그 초라한 찌꺼기들.
머리에 놓는 주사로 없앨 수 있다면 좋겠는데. 스스로 마음에 구멍을 내기 전에, 덜아프게 없앨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마 그것은 힘들겠지.
혈관이 더 부풀어 터지기 전에 꽁꽁 뭉친 찌꺼기들, 다 태워버려야겠다.
불씨를 지피려면 힘 꽤나 써야겠네. 응차. 스물아홉 통과의례로는 나쁘지 않아.
# by | 2006/02/27 19:43 | 낯선 꿈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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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까지 갈 정도면 많이 아팠나보구나..
후딱 완쾌되길 바랄께~
영혼의마법사 / 네,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영란 / 응 선생님, 고마워 ^^
마른미역 / 네, 무섭습니다!
saraswati / 아가씨..치매라니 너무해;;;
시리우스 / 편두통 정말 싫어요
부단뽀이 / 고맙고 반갑습니다
권 / 네, 엉덩이가 제일 안아프더군요
codeinz / 요즘은 나름 병원가는 재미가 붙었습니다;;;
달바람 / 근데 꽤나 많은 일을 했다우
라엘 / 뭐,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