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3월 19일
니야, 이집트 유랑기 - 길위의 하루
별똥별의 잔상을 뒤로하고 눈을 감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어느새 깊이 잠이 들었었는지 손목에서 울리는 작은 '삑삑-' 소리가 마냥 귀찮기만 했다. 그러나 카이로로 돌아가는 10시 버스를 타려면 일어나야만 한다. 추운 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잤더니 온몸이 뻣뻣하다. 침낭안에서 몸을 꿈지럭 꿈지럭거리니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이 태엽인형이라도 된 기분이다.
예상대로 하니와 벨은 아직도 쿨쿨. 하니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It's Time to go. 그는 졸려 죽겠다는 눈으로 일어나 아흐메드를 깨운다. 그리고 나는 벨을 깨웠다.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시각. 새벽에 여명이 밝아온다. 하얀 입김이 새어나오는 사막의 새벽은 어제 저녁과는 미묘하게 다른 색을 보여주며 지평선 부근부터 붉은 기운으로 따스해져온다. 그 모습을 보니 부르르 떨리는 몸이 좀 진정되는 듯 하다. 아마도 해가 머리위에 떠오를 때쯤이면 지면은 부글부글 끓을 것이다.

[모닥불, 사막의 새벽]
모닥불을 지피고 구운 아에시와 잼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쳤다. 에밀네 식구들은 천천히 돌아갈 것이기에 우리는 먼저 인사를 한다. Have a nice trip. Good Luck. 여행을 다니며 'How much' 다음으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 배낭을 맨 사람들끼리 스쳐가는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마법같은 말. 레오, 에밀, 루시앙 모두 멋진 미청년으로 자라다오.
하니가 해가 뜨는 방향을 향한 아침기도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낡은 짚에 올랐다. 시동이 잘 안걸려 잠시 맘을 졸이게 했지만 이내 부릉거리며 사막을 가로지른다. 벨 일행은 피곤한지 아예 뒷자석에서 드러누웠고 나는 해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르는 사막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정말 사막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던지, 다시 좁고 쭉 뻗은 아스팔트 도로로 나오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곤해 보이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하니가 좀 웃으라고 손가락으로 툭툭 친다. 어젯밤의 그 별똥별이 꿈처럼 되살아나 나는 몽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왔던 길을 거슬러 간다. 뒤로 멀어지는 백사막의 기괴한 모습이 백미러에 스틸컷처럼 지나간다. 몇번이나 제지당했던 검문소도 다시 지나고, 오아시스 카페도 지나고 크리스탈 마운틴도 지나고 흑사막도 지나 점점 바하리야 오아시스 마을에 가까워진다. 어느 새 태양은 머리 위쪽으로 힘을 키워 시트에 기댄 등이 축축히 젖어올만큼 날은 더워졌다.
부지런히 달린 덕분인지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바드리가 넉넉한 로브를 입고 우리를 마중나와 있었다. 지나다니는 모든 동네 사람들과 일일히 인사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푸근하다. 미리 끊어놓은 버스표를 우리에게 건내주며 좋았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보였다. 내 생애 가장 멋진 하룻밤 중 하나였어요. 그리고는 바드리와 하니에게 이집트식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양볼을 맞대며 Good bye다. 멋진 시간 선사해줘서 고마웠어요, 사막의 부자 형제들.
버스를 기다리며 작고 흙먼지 날리는 터미널의 의자에 걸터앉는다. 솔직히 터미널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분필로 버스 시각이 적힌 작은 칠판과 골목의 경비초소처럼 생긴 그저 표를 파는 작은 창구와 낡은 벤치 두개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곳은 바하리야 오아시스 마을의 중심. 주변에 맛있어 보이는 석류와 오렌지가 가득 쌓인 과일가게도 있고 과자와 물과 음료를 파는 구멍가게도 있다. 낡아서 과연 움직일까 싶은 작은 자동차에 닭을 가득 싣고 와서 파는 닭장수도 있고 당나귀 수레 가득 풀을 싣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린 꼬마도 있다. 맨발로 자전거를 모는 사람들, 그리고 여기 작고 통통한 동양의 여행객에게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는 사막의 사람들이 있다.
10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 버스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나는 차에 오르며 그곳과 작별을 고한다. 흙먼지로 더러워진 차장 밖으로 마지막 셔터를 누르며 시계를 보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이 곳과 작별한다. 안녕 사막.

[바하리야 터미널이랄지..그런 곳]

[자못 심각한, 당나귀를 모는 꼬마]

[닭파는 트럭. 실제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더러운 차창밖으로, 안녕 사막]
올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오아시스 마을들을 하나씩 거쳐가는 버스. 마을에 들릴 때마다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든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비어있던 옆자리는 드디어 세번째 들린 마을에서 임자가 나타났는데 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있는 몹시도 살집이 두둑한 아주머니였다. 10살쯤 되어보이는 큰 애는 복도에 서있게 하고 아주머니는 내 옆으로 밀고 들어왔는데 심히 살집이 좋으셔서 나는 거의 차창에 몸을 붙이다시피 해야했다. 뭐,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이 아주머니가 6살쯤 되는 어린 아들을 나와 아주머니 사이에 꾹꾹 눌러 끼워앉히는 것이었다.
아아- 왼팔이 저려온다. 카이로까지 꾸벅꾸벅 기분좋게 졸아보려던 나의 계획은 거의 수포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려오는 왼팔과 아파오는 왼쪽 어깨를 참지 못하고 결국 나는 그 6살 꼬마를 내 무릎에 앉혔다. 아주머니는 계속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아줌마, 이것이 나와 아줌마가 사는 길입니다.
무릎 위의 꼬마에게 'What's your name?' 하고 물으니 '모하메드'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마호메드 아흐메드 모하메드 참 메드가 많기도 하지. 모하메드는 굽슬거리는 짧은 머리와 까무잡잡하고 매끈한 피부,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와 낙타처럼 긴 속눈썹을 가진 귀여운 아이였다. 낯선 얼굴의 내가 신기했는지 자꾸자꾸 쳐다보는게 어찌나 예쁜지 저려오는 다리도 참을만 했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이 자라면서 지나가는 여성 여행객을 희롱하는 느끼남으로 변모하게 된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 모하메드, 너는 부디 예의바른 청년으로 자라다오.
그렇게 꼬마를 무릎에 앉히고 사막의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버스는 5시간을 넘게 달렸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의 풍경이 서서히 푸르러지기 시작하고 기자의 피라미드가 보이는 곳에서 마호메드의 가족들은 나에게 안녕을 고했다. 바이바이, 수줍게 손을 흔드는 녀석은 분명 오늘 한국인 누나의 무릎에 앉았다고 신기했다고 떠들겠지. 후후후.
교통체증이 심각한 카이로 시내에 들어서자 저린 다리에 잊혀졌던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침에 아에시 한조각 이외에 물밖에 먹지 않았는데 벌써 시각은 오후 세시가 넘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엊그제 출발했던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줄줄 알았던 버스는 어딘가 길거리에 서더니 기사는 여기가 마지막 종점이라고 내리란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간신히 펴고 버스에서 내려 10킬로는 거뜬히 나갈 커다란 초록 배낭을 둘러맸다. 음, 근데 여기가 어디란 말이고.
역시 이럴때는 택시다. 벨 일행과 같이 일단은 택시를 잡아타고 미단 타흐리르의 선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대충 5파운드면 될 듯 싶은데 대뜸 20파운드를 부른다. 몇번의 실갱이 끝에 겨우 8파운드로 낙찰을 봤다. 그냥 보내고 다른 택시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긴 버스 여행으로 셋 다 지친상태였다. 그리고 나눠내면 그리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니까.
버스가 내려준 곳에서 미단 타흐리르는 생각보다 더 가까웠다. 아, 조금 더 택시비를 깎아도 괜찮았겠군 싶었지만 뭐 어쩌랴. 1파운드에 목숨거는 알뜰살뜰한 한국 배낭 여행객들을 꽤나 봐왔지만 너무 빡빡한 여행은 스트레스일 뿐이라는게 내 지론이다. 1파운드래봤자 200원도 안되는 돈 아닌가.

[다시 돌아온 카이로, 고고학박물관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길을 잘 모르는 택시 기사에게 이렇게 돌아라 저기로 가자 한참을 설명해서 선호텔 앞에 당도했다. 아아, 약간 무서웠던 선호텔 엘리베이터가 나름 반갑다. 마침 호삼라미가 데스크를 보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과장된 몸짓으로 환영한다. Good? 하고 묻는 그에게 Fantastic! 이라고 피곤하지만 환한 웃음을 날려주었다.
이제는 벨과 그의 남자친구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 너무 고마웠다며 벨을 꼬옥 안아 마음을 전한다.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사진을 보내줄 것을 약속. 그리고 역시나 Good Luck. 6월에 있을 그들의 결혼식을 미리 축하한다.
혼자 남겨진 나는 배도 고팠지만 우선 땀내나는 몸을 씻는 것이 더 급했다. 샤워실을 쓸 수 있겠냐는 질문에 4인실 도미토리의 침대 하나를 내어주며 편히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며 배려해준다. 선호텔, 시설이 영 꽝이긴 해도 친절해서 좋다.
이제는 익숙해진 온도조절 불가능한 쫄쫄 샤워기로 시원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어느 새 오후 5시가 다 되어간다. 나는 사막에서 돌아와 홀로 먹는 저녁을 기념하기 위해 좀 지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유명인사들과 예술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다는 felfela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2인용 테이블에 앉는다. 스텔라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오는 길에 식당 옆 기념품 가게에서 산 엽서들을 꺼냈다. 시원한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니 지금 이순간이 천국이지 싶다. 맥주잔을 옆에 놓고 약간 어두운 불빛 아래서 나는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사막이 얼마나 멋졌는지 세세히 늘어놓기에 엽서는 너무 작기만 하더라.

[맥주가 있는 풍경]
웨이터들의 집요한 추근거림을 양념삼아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 새 거리는 어둑하다. 맡겨놓은 가방을 찾아 다시 둘러매고 이제는 이집트 최 남단의 도시 아스완으로 향하는 밤기차를 타러가야할 시간. 침대차야 여러번 타봤지만 웨건리는 처음이라 기대도 된다. 메트로의 긴 계단을 내려가 이번에는 묻지 않고 알아서 척척 표를 끊고 개찰구를 찾아간다. 그리고 지난번의 안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여성 전용칸이 있는 맨 앞쪽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여전히 느껴지는 시선들이지만 이제는 좀 익숙해졌는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 후후, 이것도 사막의 여유로움 덕분일까나.
무바라크 역에 당도하여 람세스 역 광장으로 나가니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들 명절이라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다. 몇번 플랫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투어리스트 경찰들을 대상으로 거듭 물어 본 끝에 겨우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플랫폼으로 나가려니 이번에는 또 다른 경찰이 거기가 아니라 저기라는 대답을 내어놓는다. 아악! 어쩌란거냐!
영어를 할 줄 알 것 같은 신사분에게 물어도 보고, 젊은 처자에게도 물어보고 이런 저런 사람에게 물어보는 동안 결국은 나를 가운데 둘러싸고 한 서른명의 이집트 청년들이 어디로 가야한다고 토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아아, 고맙긴한데 좀 난감하구려. 플랫폼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다 나를 주시하고 있잖아!
암튼 그 왁자지껄한 토론 끝에 겨우겨우 바른 플랫폼을 찾을 수 있었다. 좀 서둘러 여유있게 도착한 보람이 있구나. 진땀이 좌악 나네.
나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기차. 슬리핑 칸은 뒤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역시 비싼만큼 값을 하는지 나비넥타이를 깔끔하게 맨 점잖은 승무원 아저씨들이 나와 일일히 안내를 해준다. 유창한 영어와 깍듯한 매너를 보니 비싼 돈이 별로 아깝지 않았다. 긴복도를 따라가 안내받은 17호실. 침대가 내려져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세명이 앉을 수 있는 좁은 방이었다. 작지만 깨끗한 세면대도 있고 양치도구와 수건까지 구비되어 있다. 게다가 저녁식사와 아침식사 제공!

[하룻밤을 자게될 웨건리 17호실]
출발시간이 거의 다 되어 헐떡거리며 들어온 나의 룸메이트(;)는 스위스 아가씨였다. 직업은 경찰인데 자국 국민들을 위해 카이로에 파견중이란다. 오오 그것 참 멋지네. 철컹철컹 움직이는 기차의 리듬이 몸에 익어갈 즈음 식사가 나왔다. 알 수 없는 향을 풍기는 소고기와 볶음밥 요리를 먹으며 둘은 카이로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카이로 남자들이 얼마나 매너없는지 열심히 씹어댔다.
뜨거운 홍차까지 남김없이 마시고 나니 슬슬 피곤이 밀려온다. 승무원을 불러 침대를 어떻게 만드냐 물으니 무언가 열쇠를 돌려 철컥철컥. 방금까지 좌석이었던 의자가 돌아가 아랫층 침대가 만들어지고 윗쪽의 갈색 판을 돌리니 금새 2층 침대가 만들어진다. 신기하구만. 명랑한 스위스 경찰언니가 2층으로 올라가고 내가 아랫쪽이다.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방의 불을 끈다. 나는 침대맡의 작은 독서등을 켜고 하품을 하며 '오늘은 완전한 길위의 하루였다...'로 시작하는 여행 일기를 적기 시작한다. 침대시트가 깨끗하여 참으로 기분이 좋구나. 기차의 덜컹거림이 기분 좋구나. 잠이 쏟아지니 기분이 좋구나.

[길 위, 여행자의 얼굴]

[깨끗한 시트는 기분이 좋다]
예상대로 하니와 벨은 아직도 쿨쿨. 하니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It's Time to go. 그는 졸려 죽겠다는 눈으로 일어나 아흐메드를 깨운다. 그리고 나는 벨을 깨웠다.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시각. 새벽에 여명이 밝아온다. 하얀 입김이 새어나오는 사막의 새벽은 어제 저녁과는 미묘하게 다른 색을 보여주며 지평선 부근부터 붉은 기운으로 따스해져온다. 그 모습을 보니 부르르 떨리는 몸이 좀 진정되는 듯 하다. 아마도 해가 머리위에 떠오를 때쯤이면 지면은 부글부글 끓을 것이다.

[모닥불, 사막의 새벽]
모닥불을 지피고 구운 아에시와 잼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쳤다. 에밀네 식구들은 천천히 돌아갈 것이기에 우리는 먼저 인사를 한다. Have a nice trip. Good Luck. 여행을 다니며 'How much' 다음으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 배낭을 맨 사람들끼리 스쳐가는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마법같은 말. 레오, 에밀, 루시앙 모두 멋진 미청년으로 자라다오.
하니가 해가 뜨는 방향을 향한 아침기도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낡은 짚에 올랐다. 시동이 잘 안걸려 잠시 맘을 졸이게 했지만 이내 부릉거리며 사막을 가로지른다. 벨 일행은 피곤한지 아예 뒷자석에서 드러누웠고 나는 해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르는 사막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정말 사막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던지, 다시 좁고 쭉 뻗은 아스팔트 도로로 나오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곤해 보이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하니가 좀 웃으라고 손가락으로 툭툭 친다. 어젯밤의 그 별똥별이 꿈처럼 되살아나 나는 몽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왔던 길을 거슬러 간다. 뒤로 멀어지는 백사막의 기괴한 모습이 백미러에 스틸컷처럼 지나간다. 몇번이나 제지당했던 검문소도 다시 지나고, 오아시스 카페도 지나고 크리스탈 마운틴도 지나고 흑사막도 지나 점점 바하리야 오아시스 마을에 가까워진다. 어느 새 태양은 머리 위쪽으로 힘을 키워 시트에 기댄 등이 축축히 젖어올만큼 날은 더워졌다.
부지런히 달린 덕분인지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바드리가 넉넉한 로브를 입고 우리를 마중나와 있었다. 지나다니는 모든 동네 사람들과 일일히 인사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푸근하다. 미리 끊어놓은 버스표를 우리에게 건내주며 좋았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보였다. 내 생애 가장 멋진 하룻밤 중 하나였어요. 그리고는 바드리와 하니에게 이집트식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양볼을 맞대며 Good bye다. 멋진 시간 선사해줘서 고마웠어요, 사막의 부자 형제들.
버스를 기다리며 작고 흙먼지 날리는 터미널의 의자에 걸터앉는다. 솔직히 터미널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분필로 버스 시각이 적힌 작은 칠판과 골목의 경비초소처럼 생긴 그저 표를 파는 작은 창구와 낡은 벤치 두개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곳은 바하리야 오아시스 마을의 중심. 주변에 맛있어 보이는 석류와 오렌지가 가득 쌓인 과일가게도 있고 과자와 물과 음료를 파는 구멍가게도 있다. 낡아서 과연 움직일까 싶은 작은 자동차에 닭을 가득 싣고 와서 파는 닭장수도 있고 당나귀 수레 가득 풀을 싣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린 꼬마도 있다. 맨발로 자전거를 모는 사람들, 그리고 여기 작고 통통한 동양의 여행객에게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는 사막의 사람들이 있다.
10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 버스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나는 차에 오르며 그곳과 작별을 고한다. 흙먼지로 더러워진 차장 밖으로 마지막 셔터를 누르며 시계를 보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이 곳과 작별한다. 안녕 사막.

[바하리야 터미널이랄지..그런 곳]

[자못 심각한, 당나귀를 모는 꼬마]

[닭파는 트럭. 실제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더러운 차창밖으로, 안녕 사막]
올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오아시스 마을들을 하나씩 거쳐가는 버스. 마을에 들릴 때마다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든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비어있던 옆자리는 드디어 세번째 들린 마을에서 임자가 나타났는데 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있는 몹시도 살집이 두둑한 아주머니였다. 10살쯤 되어보이는 큰 애는 복도에 서있게 하고 아주머니는 내 옆으로 밀고 들어왔는데 심히 살집이 좋으셔서 나는 거의 차창에 몸을 붙이다시피 해야했다. 뭐,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이 아주머니가 6살쯤 되는 어린 아들을 나와 아주머니 사이에 꾹꾹 눌러 끼워앉히는 것이었다.
아아- 왼팔이 저려온다. 카이로까지 꾸벅꾸벅 기분좋게 졸아보려던 나의 계획은 거의 수포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려오는 왼팔과 아파오는 왼쪽 어깨를 참지 못하고 결국 나는 그 6살 꼬마를 내 무릎에 앉혔다. 아주머니는 계속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아줌마, 이것이 나와 아줌마가 사는 길입니다.
무릎 위의 꼬마에게 'What's your name?' 하고 물으니 '모하메드'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마호메드 아흐메드 모하메드 참 메드가 많기도 하지. 모하메드는 굽슬거리는 짧은 머리와 까무잡잡하고 매끈한 피부,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와 낙타처럼 긴 속눈썹을 가진 귀여운 아이였다. 낯선 얼굴의 내가 신기했는지 자꾸자꾸 쳐다보는게 어찌나 예쁜지 저려오는 다리도 참을만 했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이 자라면서 지나가는 여성 여행객을 희롱하는 느끼남으로 변모하게 된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 모하메드, 너는 부디 예의바른 청년으로 자라다오.
그렇게 꼬마를 무릎에 앉히고 사막의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버스는 5시간을 넘게 달렸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의 풍경이 서서히 푸르러지기 시작하고 기자의 피라미드가 보이는 곳에서 마호메드의 가족들은 나에게 안녕을 고했다. 바이바이, 수줍게 손을 흔드는 녀석은 분명 오늘 한국인 누나의 무릎에 앉았다고 신기했다고 떠들겠지. 후후후.
교통체증이 심각한 카이로 시내에 들어서자 저린 다리에 잊혀졌던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침에 아에시 한조각 이외에 물밖에 먹지 않았는데 벌써 시각은 오후 세시가 넘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엊그제 출발했던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줄줄 알았던 버스는 어딘가 길거리에 서더니 기사는 여기가 마지막 종점이라고 내리란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간신히 펴고 버스에서 내려 10킬로는 거뜬히 나갈 커다란 초록 배낭을 둘러맸다. 음, 근데 여기가 어디란 말이고.
역시 이럴때는 택시다. 벨 일행과 같이 일단은 택시를 잡아타고 미단 타흐리르의 선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대충 5파운드면 될 듯 싶은데 대뜸 20파운드를 부른다. 몇번의 실갱이 끝에 겨우 8파운드로 낙찰을 봤다. 그냥 보내고 다른 택시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긴 버스 여행으로 셋 다 지친상태였다. 그리고 나눠내면 그리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니까.
버스가 내려준 곳에서 미단 타흐리르는 생각보다 더 가까웠다. 아, 조금 더 택시비를 깎아도 괜찮았겠군 싶었지만 뭐 어쩌랴. 1파운드에 목숨거는 알뜰살뜰한 한국 배낭 여행객들을 꽤나 봐왔지만 너무 빡빡한 여행은 스트레스일 뿐이라는게 내 지론이다. 1파운드래봤자 200원도 안되는 돈 아닌가.

[다시 돌아온 카이로, 고고학박물관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길을 잘 모르는 택시 기사에게 이렇게 돌아라 저기로 가자 한참을 설명해서 선호텔 앞에 당도했다. 아아, 약간 무서웠던 선호텔 엘리베이터가 나름 반갑다. 마침 호삼라미가 데스크를 보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과장된 몸짓으로 환영한다. Good? 하고 묻는 그에게 Fantastic! 이라고 피곤하지만 환한 웃음을 날려주었다.
이제는 벨과 그의 남자친구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 너무 고마웠다며 벨을 꼬옥 안아 마음을 전한다.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사진을 보내줄 것을 약속. 그리고 역시나 Good Luck. 6월에 있을 그들의 결혼식을 미리 축하한다.
혼자 남겨진 나는 배도 고팠지만 우선 땀내나는 몸을 씻는 것이 더 급했다. 샤워실을 쓸 수 있겠냐는 질문에 4인실 도미토리의 침대 하나를 내어주며 편히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며 배려해준다. 선호텔, 시설이 영 꽝이긴 해도 친절해서 좋다.
이제는 익숙해진 온도조절 불가능한 쫄쫄 샤워기로 시원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어느 새 오후 5시가 다 되어간다. 나는 사막에서 돌아와 홀로 먹는 저녁을 기념하기 위해 좀 지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유명인사들과 예술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다는 felfela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2인용 테이블에 앉는다. 스텔라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오는 길에 식당 옆 기념품 가게에서 산 엽서들을 꺼냈다. 시원한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니 지금 이순간이 천국이지 싶다. 맥주잔을 옆에 놓고 약간 어두운 불빛 아래서 나는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사막이 얼마나 멋졌는지 세세히 늘어놓기에 엽서는 너무 작기만 하더라.

[맥주가 있는 풍경]
웨이터들의 집요한 추근거림을 양념삼아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 새 거리는 어둑하다. 맡겨놓은 가방을 찾아 다시 둘러매고 이제는 이집트 최 남단의 도시 아스완으로 향하는 밤기차를 타러가야할 시간. 침대차야 여러번 타봤지만 웨건리는 처음이라 기대도 된다. 메트로의 긴 계단을 내려가 이번에는 묻지 않고 알아서 척척 표를 끊고 개찰구를 찾아간다. 그리고 지난번의 안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여성 전용칸이 있는 맨 앞쪽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여전히 느껴지는 시선들이지만 이제는 좀 익숙해졌는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 후후, 이것도 사막의 여유로움 덕분일까나.
무바라크 역에 당도하여 람세스 역 광장으로 나가니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들 명절이라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다. 몇번 플랫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투어리스트 경찰들을 대상으로 거듭 물어 본 끝에 겨우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플랫폼으로 나가려니 이번에는 또 다른 경찰이 거기가 아니라 저기라는 대답을 내어놓는다. 아악! 어쩌란거냐!
영어를 할 줄 알 것 같은 신사분에게 물어도 보고, 젊은 처자에게도 물어보고 이런 저런 사람에게 물어보는 동안 결국은 나를 가운데 둘러싸고 한 서른명의 이집트 청년들이 어디로 가야한다고 토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아아, 고맙긴한데 좀 난감하구려. 플랫폼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다 나를 주시하고 있잖아!
암튼 그 왁자지껄한 토론 끝에 겨우겨우 바른 플랫폼을 찾을 수 있었다. 좀 서둘러 여유있게 도착한 보람이 있구나. 진땀이 좌악 나네.
나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기차. 슬리핑 칸은 뒤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역시 비싼만큼 값을 하는지 나비넥타이를 깔끔하게 맨 점잖은 승무원 아저씨들이 나와 일일히 안내를 해준다. 유창한 영어와 깍듯한 매너를 보니 비싼 돈이 별로 아깝지 않았다. 긴복도를 따라가 안내받은 17호실. 침대가 내려져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세명이 앉을 수 있는 좁은 방이었다. 작지만 깨끗한 세면대도 있고 양치도구와 수건까지 구비되어 있다. 게다가 저녁식사와 아침식사 제공!

[하룻밤을 자게될 웨건리 17호실]
출발시간이 거의 다 되어 헐떡거리며 들어온 나의 룸메이트(;)는 스위스 아가씨였다. 직업은 경찰인데 자국 국민들을 위해 카이로에 파견중이란다. 오오 그것 참 멋지네. 철컹철컹 움직이는 기차의 리듬이 몸에 익어갈 즈음 식사가 나왔다. 알 수 없는 향을 풍기는 소고기와 볶음밥 요리를 먹으며 둘은 카이로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카이로 남자들이 얼마나 매너없는지 열심히 씹어댔다.
뜨거운 홍차까지 남김없이 마시고 나니 슬슬 피곤이 밀려온다. 승무원을 불러 침대를 어떻게 만드냐 물으니 무언가 열쇠를 돌려 철컥철컥. 방금까지 좌석이었던 의자가 돌아가 아랫층 침대가 만들어지고 윗쪽의 갈색 판을 돌리니 금새 2층 침대가 만들어진다. 신기하구만. 명랑한 스위스 경찰언니가 2층으로 올라가고 내가 아랫쪽이다.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방의 불을 끈다. 나는 침대맡의 작은 독서등을 켜고 하품을 하며 '오늘은 완전한 길위의 하루였다...'로 시작하는 여행 일기를 적기 시작한다. 침대시트가 깨끗하여 참으로 기분이 좋구나. 기차의 덜컹거림이 기분 좋구나. 잠이 쏟아지니 기분이 좋구나.

[길 위, 여행자의 얼굴]

[깨끗한 시트는 기분이 좋다]
# by | 2006/03/19 00:18 | 지구정복자료수집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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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지의 바가지는 정말 너무해요.
찜질방에서 사는 느낌일까요?
어느 조선족 아줌마에게 들었는 데, 중국의 어느 내륙지방에서는 너무 더워서 밤에만
활동한다고 합니다. 성장이 빨라서 열 예닐곱살이면 결혼을 한다더군요.
대신 그만큼 노화가 빨라진다고 합니다. 이집트 사람들도 나이에 비해 늙어보이나요?
달바람 / 50파운드 안부른게 다행;; (이집트에선 저 정도면 양호)
marlowe / 이집트의 가을은 꽤나 쌀쌀합니다. 이집션들은 결혼이후로 급격히 늙어보이는 듯
Nariel / 마님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