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사고 - 등을 토닥토닥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축축 처져있는 내 자신이 보기 싫어 어제는 모처럼 칼퇴근(!)을 하고 영화를 보러갔다. '러브레터' 의 조감독 출신이고, 'GO' 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를 만든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오늘의 사건사고' 가 목표물. 회사에서 가까운 메가박스에서 개봉한 것은 행운이랄까. (메가박스와 시네코아 두 곳에서 상영중)
퇴근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이번주가 지나가 버리면 보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더 채근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004년 부천 영화제에서 놓쳐버린 이후로 볼 기회가 없어져버렸구나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무려 개봉씩이나 해주시다니 감개무량. 기대에 부응하듯 영화는 무척이나 재밌고 따스하고 그래서 아아 보길 잘했다 생각하였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GO' 에서 반해버렸다. 젊은 청춘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지. 영화 속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조제의 츠마부키 사토시와 이케와키 치즈루를 보는 것은 더없이 즐거웠다. 피와 뼈에 나왔던 가시와바라 슈지가 너무 부드러운 얼굴로 나와서 놀라기도 했고 '스왈로테일 버터플라이' 의 이토 아유미를 다시 보는 것도 너무너무 좋았다.
감독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라고 밝힌 것처럼 정말 영화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학원에 들어가 교토로 이사한 마사미치네 집들이에 모인 친구들의 하룻밤, 벽 사이에 낀 남자의 하룻밤, 바닷가에 좌초해버린 고래가 사건이라면 사건이랄까.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 세 사건들은 서로가 모르는 사이의 하룻밤에 동시에 일어난다. TV 뉴스의 '오늘의 사건사고'를 통해 소식이 전해지는 것 뿐.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날이 밝으면서 이 세 사건은 교묘하게 한순간씩 스쳐지나간다. 영화가 교묘하게 뒤섞어 버린 시간 배치는 이 작은 인연을 더욱 증폭시킨다.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게되는 작은 인연일 뿐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조심스레 엮이고 짜여 돌아가는 것이다.

영화는 우리의 일상을 환기시킨다. 농담처럼 지나가는, 아무런 '사건' 도 일어나지 않는 그 하룻밤이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개인적인 '나름의 사건' 이 일어나는가를 세심히 살핀다.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좀처럼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나카자와', 어딘가 있을 꽃미남 연인을 꿈꾸며 들이대기를 반복하는 '케이토', 케이토의 소개로 나카자와와 사귀고 있지만 단짝 친구인 나카자와와 케이토의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마키', 대학원 진학으로 소원해져버린 여자친구에게 좀처럼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마사미치' 비주얼이 딸려 여자에게 인기없다는 콤플렉스 덩어리인 '니시야마' 얼굴은 근사하게 잘생겼지만 너무 소심하고 착해 여자친구와 위기에 처한 '가와치' 등 소소한 술자리에 엮인 그들의 속내는 감정으로 넘쳐흐르고 복잡하고 각각 너무 중요하고 심각하다.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며 객관적이면서도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카메라는 마지막 고래의 귀환으로 우리에게 활짝 웃음을 보낸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당신의 일상이지만 또한 그것은 엄청난 사건과 사고가 아니겠냐고. 우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영화다.





덧. 츠마부키 사토시의 웃는 얼굴은 정말 언제나 이 누나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구나!

by 니야 | 2006/04/07 10:04 | culture | 트랙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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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푸르미 세상 at 2006/04/07 10:17

제목 : 68.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늘의 사건사고>
영화를 본 Y씨, 일본의 떠오르는 신예 츠마부키 사토시를 좋아하는 M씨에게 일본영화 <오늘의 사건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다. 제목이 왜 <오늘의 사건사고>냐. 사건이 꽤 많이 일어나나 보네. -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 응 제목에 ‘오늘의 사건사고’는 그냥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가십 뉴스를 말한 거야. 영화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 그럼 대체 무슨 내용인데. - ......more

Tracked from woody's film.. at 2006/04/18 02:40

제목 :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오늘의 사건> - 덤덤한 ..
일상성이 근대 영화의 화두라면 그것은 아마도 안토니오니를 비롯한 유럽 감독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리라. 거대 서사가 무기력한 시대에 인간의 일상을 바라보는 행위는 그 자체로 드라마틱할 수도 있고, 일상의 미세한 균열들을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히 '영화적'인 것이다. 와 &lt;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gt;로 잘 알려진 유키사타 이사오의 2004년작 &lt;오늘의 사건&gt;은 일본 젊은이들의 하루의 일상을 두, 세가지 사건......more

Commented by 푸르미 at 2006/04/07 10:16
ㅎㅎ 사토시 얼굴은 참 자알 생겼더군요.
Commented by skalsy85 at 2006/04/07 10:26
아아~ 정말 미치도록. 잘 생겼군요. 그야말로 무장해제 인정!!
Commented by 리얼 at 2006/04/07 15:56
무장해제!당하셨군요:)
영화를 너무 못 보고 지내서 정신이 흔들휘청한 요즘입니다.(흑)
Commented by Juno at 2006/04/07 17:55
사실 굳이 특별한 일을 찾지 않더라도 일상 그 자체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일상'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으려나요?^^
Commented by saraswati at 2006/04/07 18:00
왠지 이 리뷰 좋은걸.
Commented by 시리우스 at 2006/04/07 21:29
자금난의 영향으로 영화 못본지 어언....ㅠ 사토시는 연기도 잘하고 웃는 모습은 그야말로 정이들게 하는 배우 ㅠ
Commented by Shoo at 2006/04/07 21:44
사토시 만세, 입니다 :)
Commented by 니야 at 2006/04/08 15:20
푸르미 / 웃는 얼굴이 가히 예술적이지요
skalsy85 / 이제 저런 남친을 갖는 꿈은 포기했지만..저런 아들을 낳는 것은 아직 꿈꾸고 있습;;;;
리얼 / 많이 바쁘신가봐요
Juno / 후후- 맞습니다
saraswati / 후후후- 영화 굉장히 좋다구
시리우스 / 아아 정말 그렇죠?
Shoo / 정말 이 누나의 가슴을 어찌나 설레게 하는지요
Commented by 안드로이드 at 2006/04/12 09:30
누님~~
Commented by 라엘 at 2006/04/15 01:01
츠바부키 사토시한테 받은 싸인을(기자 체면에 민망하여 친구시켜 받았던;;;)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하하하. 그가 나오면 아무리 사소한, 드라마의 조연이라도 다 봅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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