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야, 이집트 유랑기 -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그렇게 또또 걸어서 도착한 곳은 시장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시장 구경이 제일 신나. 물론 자꾸 이것저것 사라고 귀찮게 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뭐 여행자의 숙명이고, 시장은 늘 활기차고 살아있고 재미있다. 펠루카를 탈 시간까지는 두어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느긋하게 시장구경을 하기로 하자.
 아스완 역의 바로 옆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길게 길게 뻗은 시장이 바로 나온다. 비수기라 그런지 시장을 둘러보는 여행객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는데 어찌나 '헤이~ 재패니즈~' 를 찾아대는지 아이고 귀가 따갑습니다 그려. 이래서는 제대로 물건 구경하기는 틀렸다 싶기도 하지만 가게마다 그득그득 쌓여있는 색색의 향신료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스팽글이 잔뜩 달린 이집트 언니들이 언제 입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야시시 화려한 옷들, 역시 수단과 가까운 남쪽이라 아프리카의 향취가 폴폴 풍기는 나무 조각들과 가면들, 뜨겁게 끓여낸 차와 정체모를 고기요리들, 무슨 맛인지 짐작할 수 없는 과자들이 잔뜩이라 재패니즈를 애타게 찾는 소리는 귓등으로 흘려듣고 룰루랄라 재밌게 돌아다닐 수 있다.
 시장 깊숙히는 오래된 건물들을 부수고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이미 공사가 끝난 곳들은 깔끔히 새단장을 하고 여행객을 유혹한다. 그 중 가장 멋진 조각상들이 있는 가게에 들어갔더니 다들 반색을 하며 의자를 내오고 차를 내오고 어디서 왔냐 뷰리풀이네 아이 러브 코리아 아주 난리법석이다. 검은 아프리카의 사람이 길쭉히 멋지게 조각되어 어딘가 모딜리아니의 냄새도 풍기는 기념품을 고르자 자기 아버지가 직접 깎은 거라며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는데 역시나 가격은 엄청나게 높게 불러댄다. 20분의 실갱이 끝에 처음 부른 가격의 절반을 깎아 신문지에 조심스레 싸서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내 손에 들려줬다. 집에 돌아가면 무냐 빠냐의 손이 닿지 않는 책장 위에 장식해 놓아야지. 맘에 들어.


[가득한 향신료]


[새로 단장한 시장거리]



 호텔이 가까운 덕분에 잠시 방에 들러 이리저리 쇼핑한 검은 봉다리들을 침대위에 던지고 땀을 한번 닦아주고 두건을 고쳐쓰고 이제는 펠루카를 타러 나간다. 나일강은 남쪽으로 갈수록 넓고 아름다워 아스완의 나일강이 가장 멋지고 아스완에서 타는 펠루카가 가장 재밌다고.


[바람을 받고 나는 펠루카]

 적당해 보이는 펠루카꾼이 나타날 때까지 십여명의 캡틴들을 물리치고 능숙한 영어와 핸섬한 얼굴을 가진 젊은 선장과 딜에 들어갔다. 혼자 탈거니까 싸게 해달라고 15분쯤 옥신각신해서 마침내 캡틴 모하메드와 악수를 하고 펠루카를 혼자 두시간 동안 통째로 전세낸다. 두시간의 펠루카 여행은 나일강의 중간에 자리잡은 이런 저런 섬들을 들러 해가 지면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다.
 바람을 가르고 배가 쭉쭉 나아간다. 펠루카는 나일강을 지그재그로 움직이는데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꼭 이렇게 바람을 받아 지그재그로 움직여야 한단다. 늦은 오후가 되니 시원하게 불어오는 나일강의 바람에 땀이 쫘악 식고 돛은 팽팽하게 펄럭여 마음도 한껏 팽팽히 당겨졌다.


[뱃머리가 향하는 곳]


[캡틴의 친구로 항해보조. 전형적인 누비안]

 처음 내려준 곳은 키치너 아일랜드로 일종의 식물원이었다. 키치너라는 영국인이 아프리카에서 나는 온갖 식물들을 가져와 이 섬에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단다. 과연 온갖 아프리카의 신기한 정글 나무들과 꽃들이 가득. 꽃들은 어쩜 그렇게 원색의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지, 나무는 어쩜 그렇게 쭉쭉 높이 뻗어 하늘을 독차지해버리는지.
 즐거운 곳이었다. 영어가 통하는 여행객들도 많아서 이야기할 사람들도 많았고, 귀여운 고양이들도 와서 친한척을 한다. 섬의 가장자리에서는 나일의 색다른 풍경도 볼 수 있고 저 멀리는 누비안 낙타꾼의 집도 보인다. 산책하기 딱 적당하고 종종 가볍게 걷기 좋은 곳이다.


[아프리카의 커다란 나무]


[엣, 피쉬아이로 찍은 것처럼 나와버렸네]


[색다른 나일]


[강건너 낙타가 있는 풍경]

 다시 펠루카에 올라탔을 때는 아까와 달리 바람이 잦아들었고 강 위에는 더 많은 펠루카가 떠있었다. 바람이 없는 탓에 배는 느릿느릿 나아간다. 강의 동편 언덕위에 있는 호텔을 가리키며 캡틴이 '캑터스' 한다. 아, 저 곳은 추리소설의 여왕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가 '나일강의 죽음'을 집필했던 호텔이군. 창가쪽 카페에서 나일강을 바라보며 그 죽음의 이야기를 꾸며나갔을거라 상상하니 온몸이 찌릿찌릿하다.
 그렇게 또 호텔을 지나쳐 나에게 보여준 것은 나일로미터. 강의 높이를 재는 치수계로 이것이 바로 그 세계사 시간에 지겹도록 들었던 '나일강의 범람'을 조절할 수 있었던 그것이었단 말이로군요. 몇천년 전에 이런 것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새삼 경외감이 든다. 그러니까 저 그림문자는 나일강에 잠겼다 드러났다 그렇게 몇천년을 지내왔단 얘기.


[펠루카가 있는 나일은 아름다워]


['나일강의 죽음'이 탄생된 그 곳]


[몇천년을 견디어온 나일로미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엘리펀트 아일랜드. 누비안들이 모여 살고 있는 전통마을이었는데 낡고 지저분했고 냄새가 났지만 아기자기했다. 혼자 가면 위험할 수 있다고 캡틴이 따라와준다. 애들은 염소와 함께 뛰어놀고 있고, 집집마다 저녁준비에 한참이다. 좁은 골목 골목을 따라 마을 구경을 하고 있자니 지저분한 양들이 꽤나 천진하게 뛰어놀고 있었는데 캡틴 모하메드에 의하면 이틀 뒤 바이람 축제날에 저 양들은 다들 저녁식사 신세가 될거란다. 쯧쯧.


[누비안 마을의 골목]

 다시 펠루카에 올라 이제는 뉘엿뉘엿 해가 지는 나일강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구름이 적당히 덮여 더없이 아름다운 석양을 보여주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강바람에 식어 제법 팔에 소름이 돋는다.
 하루 중에 가장 멋진 시간, 인생의 축복같은 시간, 나일강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


[가장 아름다운 시간]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멋진 뱃놀이에 감사를 표하고 캡틴과 안녕한다. 제법 어두워진 강가를 따라 걸으며 후아 후아 심호흡을 한다. 낮에 만났던 펠루카꾼들이 다시 인사를 해온다.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론리에서 추천한 숙소 근처 이집트 전통 피자집에서 해결하기로 결정. 마침 그 가게에는 내 또래의 한국 친구들 4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 준다. 그들은 저녁을 먹고 바로 룩소르로 떠난다고. 아, 정말 오랫만에 한국말을 해본다. 친절한 친구들에게 룩소르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인사했는데 실제로 그들과 룩소르에서 재회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뭐, 그 얘기는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고..
 내가 먹은 것은 참치가 잔뜩 들어간 이집트식 피자였는데 오오 맛나다. 다만 너무 커서 혼자는 다 못먹고 최대한 먹어 반을 해치웠다. 옆 테이블에서는 혼자서 이거 다 먹던데 정말 이집트 사람들은 대식가다. 남긴 피자, 언제나 그렇듯이 한국 돌아오니 생각나더라.


[참치 피자였어요]

 뿌듯한 마음에 호텔로 돌아온다. 시원하게 씻고 가방을 정리하고 왜 돈이 40파운드 모자랄까 고민하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포기하고 침대에 풀썩 몸을 던진다. 아스완은 따뜻해서 침낭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 너무 좋다. 깨끗한 린넨 시트의 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한다.
 내일은 새벽 3시부터 강행군이니 일찍 자자.

by 니야 | 2006/05/15 23:47 | 지구정복자료수집 | 트랙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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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Revival at 2006/05/25 14:05

제목 : 풍요로운 아프리카의 도시, 아스완 여행 리뷰
아스완은 이집트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누비안 들의 주된 거주지 중 한 곳이다. 그래서 이집트의 많은 도시들과는 또 다른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스완은 카이로에서 기차를 이용해 13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는 관광객들도 있지만 좀 더 저렴한 여행을 원한다면 밤 10시에 람세스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기차는 오전 7시 반과 밤 10시, 2번 출발하는데 밤 기차를 이용하면 11시쯤 도착해 오후.....more

Commented by skalsy85 at 2006/05/16 00:06
자꾸만. 부추기시는군요.. 맘 속에 남은 이 미련. 이 찌꺼기들을 어딘가 가서 털어버리고 와야할텐데.. 자꾸 떠나고 싶은데 시간은 안나니. 돌겠습니다...
Commented by saraswati at 2006/05/16 10:01
근사하군. 근데 말야 나는 '영어가 통하는 여행객들도 많아서 이야기할 사람들도 많았고' 이런 문구를 읽을 때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언어구사력의 제한성은 차치하고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사람도 절대 쌩까고 지나가거든. 진정 놀라운 사교성!
Commented by 바람 at 2006/05/16 10:04
인도 언젠가는 꼭 가고 싶다고 생각 하는 곳 이예요.^^
여행기 참 좋네요.
Commented by 사은 at 2006/05/16 10:07
니야님 덕분에 나중에는 꼭 여행! 이란 마음이 조금씩 쌓여갑니다. 근데 관광객=일본인이란 생각이 유럽에만 있는게 아니었군요! 와아.
Commented by Nariel at 2006/05/16 10:10
여행기 쓸 시간도 없는 불쌍한 니야님 ㅠ.ㅠ 으어엉;
Commented by jjay at 2006/05/16 12:51
꼭 가보고싶은 이집트에요.
Commented by ☆*깨*☆ at 2006/05/16 14:25
와 정말 맛있겠다...왠지 스산한 시장의 풍경도 맘을 울리지만 점심을 조금 밖에 먹지 못한 저로서는 저 참치 피자가...ㅠ_ㅠ
Commented by 니야 at 2006/05/16 16:32
skalsy85 / 그러다 시간이 나면 돈이 없고 말이죠.
saraswati / 응, 무슨얘기를 하더라. 어디 다녀왔냐 좋았냐 어디로가냐 맛있는식 당은 찾아냈냐 거기로 가는 가장 좋고 싼 방법은 뭐다 같은 잡다구리한 여행잡담을 하지. 혼자 배낭여행가면 없던 사교성도 생긴답니다.
바람 / 아, 이집트..인데....저도 인도는 가고싶어요.
사은 / 동양인은 무조건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죠. 그다음은 차이니즈.
Nariel / 이번주는 시간 나요. 후후
jjay / 단, 든든한 남자친구를 대동하면 더 좋답니다. 이집트는
깨 / 좀 기름기가 많았지만 맛났다오.
Commented by marlowe at 2006/05/16 19:13
[크래쉬]에서 이란인 노부부는 이라크놈이라는 욕을 듣자 분개합니다.
영화를 보며 저도 화가 났지만, 마음은 편치 않더군요.
저 역시 그렇게 단순하게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이집트에도 피자가 있다는 걸 보고 좀 놀랐어요.
하나를 알 때마다, 제가 열을 몰랐다는 걸 깨닫습니다.
Commented by 니야 at 2006/05/17 08:34
marlowe / 그래서 여행이 더 즐거운 듯 싶기도 하구요
Commented by 시리우스 at 2006/05/17 13:18
니야님은 정말로 분홍색이 잘 어울리시는듯 +_+
Commented by 니야 at 2006/05/17 13:25
시리우스 / 오랜 세뇌효과입니다. 아하하
Commented by Andrea at 2006/09/12 17:09
아스완 역 옆 시장에서..물을 싸게 샀었는데..
알고보니..석회질도 잘 제거안된..
'조리용'물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물 먹고 다들 배탈나서 고생했었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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