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16일
사요나라, 갱들이여 - 이해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감정
사요나라, 갱들이여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이승진 옮김 / 향연
“80년대의 올바르게 미친[狂] 소설” 이라는 책 소개가 책의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지만 일부는 말해준다. 바로 '미친' 이라는 단어가.
대학교 1학년때 - 아이고, 벌써 십년전 - 800번대의 일본문학 서가에서 하루키를 모두 탐독하고 다음으로 잡은 책이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였다. 그리고 다 읽지 못했다. 도무지 소설같지 않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이 책이 그렇게 유명하고 훌륭한 평가를 받는다니 고개를 저었다. 금새 반납하고 대신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빌렸던 것 같다.
십년이 지나서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실질적 데뷔작이자 명성을 안겨다준 '사요나라 갱들이여' 가 출간되었다. 혹시나 십년이 지났으니 그의 소설을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책을 잡았고, 나는 하루가 채 안되어 맨 뒷장을 아쉽게 넘기고 후아- 깊은 숨을 내쉬며 책장을 덮는다.
이해했냐고?
아니, 나는 십년이 지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소설 안에서 고양이 헨리4세는 플라톤을 읽으며 잠이 들고, 딸이 죽는 날이 구청으로부터 엽서로 통보되어 온다. 건물의 6층에는 강이 흐르고, 시인은 냉장고로 변신하며 학교 옆방에는 흡혈귀가 산다. 이 소설의 내용을 얘기하기는 불가능하다. 시간의 흐름도 짐작하기 힘들고 소설의 형식이라고 우리가 믿고있는 것들을 우습게 무너뜨린다. 시인지 소설인지 잠언집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광기의 끄적임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 소설이 전공투의 한복판에 있었던 그의 경험이 녹아있으며, 10년의 실어증을 치료하기 위한 단초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저 애매모호 안개 속을 헤매듯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사요나라,갱들이여'는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내 귓에 대고 직접 속삭이는 듯 생생했고 - 그렇게 비현실적인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 재밌었고 점점 '나'의 심리에 동화되어갔다. 걸어갈 수 있다고 속삭이는 죽은 딸을 업고 지정된 곳으로 가는 나의 어깨가 얼마나 슬프고 애잔한지 느꼈고, S.B가 지어준 이름 '사요나라, 갱들이여' 를 속삭이는 목소리를 짐작할 수 있었고, 건물의 6층에 흐르는 강가에서의 피크닉은 여유롭고 행복한 감정에 젖어들게 만들었으며 갱이 되었지만 썩은 육신이 되어버린 쿨하지 못한 자신은 아프고 우습고 그렇다.
무엇보다, 이 책은 슬프다. 책장을 덮는 손이 무겁게 느껴질 만큼 슬프고 아프다. 이해하지 못해도 느낄 수는 있다. 열아홉의 나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스물아홉이 되니 겨우 느끼게 되었다. 눈물이 날 만큼 슬프다.
십년이 더 지나면 어쩌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뭐,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느끼고 있는 지금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때를 대비해 고이 간직하고 있어야지.
아마 중간중간 참지 못하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소리내어 읽게 될 것 같다는 예상은 들지만서도.
"나는 책상위에 펜을 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하품을 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
마침내 나는 현재에 따라잡혔다."
<사요나라 갱들이여> P 334
# by | 2006/05/16 17:23 | culture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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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왕 / 저런 문장으로 책이 가득 채워지죠.
저두. 저 책이 이해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보고 싶네요~ :)
skalsy85 / 이해하기보다 느끼는 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