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03일
엉겁결에
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서울에서 십여년을 살면서도 이 곳은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 아빠가 신혼생활을 이 근처에서 보내셨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까운 듯 하면서도 꽤나 멀다. 이 거리를 매번 만나러 와주었구나.
이토록 낯선 동네에 발을 들인 이유는 오로지 그가 이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첫 키스를 나눈지 열흘 남짓 된 남자친구는 이제 두달 정도 저기 어딘가의 연수원에 갇혀 혹독한 사회 신고식을 치뤄야한다. 무슨 신입사원 연수를 7주씩이나, 그것도 주말마저 해병대 캠프니 산행이니 끌고 다니면서 외부와 격리시켜놓고 호되게 시키는지 나로선 잘 이해가 안되지만 또 그게 필요한 세계도 있겠지. 내가 속해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될 만큼 다른 분위기다. 그래도 어쨌든 혹독함만큼은 비슷할 것이다. 이 험난하고 유혹적인 생활의 세계에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웰컴 웰컴.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다정한 열흘을 보낸 뒤에 49일을 떨어져있게 되었다. 우연히도 중음(中陰)의 기간과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애는 아무것도 아닌 우연에 의미를 더하는 망상증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마련이다. 망자가 다음 세계를 결정하는 그 시간처럼 우리도 이 시간을 지내고 나면 어떤 관계의 세계로 나아갈지 알게 될까. 아마도 모르겠지.
물리적으로 떨어져야 하는 상황은 언제나 안타까움을 배가시키는 법이다. 퇴근 후의 피곤함을 나는 기꺼이 감내하고 그가 사는 곳으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그의 생활을 잠시 엿본다. 딱 혼자사는 청년의 집이다. 적당히 지저분하고, 적당히 어수선하다. 내가 강아지 사료라고 착각했던 것은 단백질 보충제였다. 코코아 맛이 난다며 먹어볼테냐 농하는 그를 보고 웃음이 났다. 우리 집에 놓여있는 체중계를 보고 그도 똑같이 웃을까.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고, 책은 잘 안읽는다. 냉장고의 반을 채우고 있는 보약이 사랑을 많이 받는 자식임을 알려준다. 7주동안 떠나있을 짐을 같이 꾸려주고, 중간에서 약간 위의 나름 상위권 성적을 받아 오라며 머리를 쓰윽쓰윽 해준다. 그리고 가서 절대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오라는 굿바이 키스를 해주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백미러를 통해 그가 택시번호를 외우며 중얼거리는 것이 보인다. 마음이 한번 쿨렁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마음이 덜컹이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 앞에 놓여있는 감정의 문 중 어느 하나가 또 덜컹 열리면서 나를 낚아챈다. 머뭇거릴 틈도 없이 이미 등 뒤의 문은 닫혀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바로 한시간 전만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 나는 와 있고, 그래서 인생은 불안하면서도 재밌어진다. 적어도 내 안의 감정 시스템은 앨리스가 경험한 이상한 나라와 유사하게 작동된다.
택시 뒷좌석에 몸을 기대어 나는 문이 열리던 순간을 되짚어냈다. 축제의 인파 속에서 내 옆에 조용히 스윽 와 서있던 그 순간 손잡이가 돌아가기 시작했어. 놀란 눈으로 올려다봤더니 장난끼가 가득한 웃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이 활짝 열린 것은 우리가 서로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이런저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어학연수를 핑계대고 훌쩍 떠나버렸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걷는 이 사람의 손을 잡고 싶어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었다.
하아, 당분간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다가 그 순간을 되짚고 있자니 어느 새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먹은 김밥이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어 점심을 거른채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연수원에 잘 도착했을까 생각한다. 분명 거기서도 장난끼 가득한 눈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살짝 긴장도 했겠지.
어쩌다 그리 되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내 대답이다. 간단하다. 실은 '엉겁결에' 다.
엉겁, 끈끈한 물건이 마구 달라붙어있는 상태, 그리고 그 겨를에. 순간 나를 휘감은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의도치 않은 겨를에 그리되었다고.
이토록 낯선 동네에 발을 들인 이유는 오로지 그가 이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첫 키스를 나눈지 열흘 남짓 된 남자친구는 이제 두달 정도 저기 어딘가의 연수원에 갇혀 혹독한 사회 신고식을 치뤄야한다. 무슨 신입사원 연수를 7주씩이나, 그것도 주말마저 해병대 캠프니 산행이니 끌고 다니면서 외부와 격리시켜놓고 호되게 시키는지 나로선 잘 이해가 안되지만 또 그게 필요한 세계도 있겠지. 내가 속해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될 만큼 다른 분위기다. 그래도 어쨌든 혹독함만큼은 비슷할 것이다. 이 험난하고 유혹적인 생활의 세계에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웰컴 웰컴.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다정한 열흘을 보낸 뒤에 49일을 떨어져있게 되었다. 우연히도 중음(中陰)의 기간과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애는 아무것도 아닌 우연에 의미를 더하는 망상증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마련이다. 망자가 다음 세계를 결정하는 그 시간처럼 우리도 이 시간을 지내고 나면 어떤 관계의 세계로 나아갈지 알게 될까. 아마도 모르겠지.
물리적으로 떨어져야 하는 상황은 언제나 안타까움을 배가시키는 법이다. 퇴근 후의 피곤함을 나는 기꺼이 감내하고 그가 사는 곳으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그의 생활을 잠시 엿본다. 딱 혼자사는 청년의 집이다. 적당히 지저분하고, 적당히 어수선하다. 내가 강아지 사료라고 착각했던 것은 단백질 보충제였다. 코코아 맛이 난다며 먹어볼테냐 농하는 그를 보고 웃음이 났다. 우리 집에 놓여있는 체중계를 보고 그도 똑같이 웃을까.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고, 책은 잘 안읽는다. 냉장고의 반을 채우고 있는 보약이 사랑을 많이 받는 자식임을 알려준다. 7주동안 떠나있을 짐을 같이 꾸려주고, 중간에서 약간 위의 나름 상위권 성적을 받아 오라며 머리를 쓰윽쓰윽 해준다. 그리고 가서 절대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오라는 굿바이 키스를 해주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백미러를 통해 그가 택시번호를 외우며 중얼거리는 것이 보인다. 마음이 한번 쿨렁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마음이 덜컹이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 앞에 놓여있는 감정의 문 중 어느 하나가 또 덜컹 열리면서 나를 낚아챈다. 머뭇거릴 틈도 없이 이미 등 뒤의 문은 닫혀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바로 한시간 전만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 나는 와 있고, 그래서 인생은 불안하면서도 재밌어진다. 적어도 내 안의 감정 시스템은 앨리스가 경험한 이상한 나라와 유사하게 작동된다.
택시 뒷좌석에 몸을 기대어 나는 문이 열리던 순간을 되짚어냈다. 축제의 인파 속에서 내 옆에 조용히 스윽 와 서있던 그 순간 손잡이가 돌아가기 시작했어. 놀란 눈으로 올려다봤더니 장난끼가 가득한 웃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이 활짝 열린 것은 우리가 서로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이런저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어학연수를 핑계대고 훌쩍 떠나버렸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걷는 이 사람의 손을 잡고 싶어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었다.
하아, 당분간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다가 그 순간을 되짚고 있자니 어느 새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먹은 김밥이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어 점심을 거른채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연수원에 잘 도착했을까 생각한다. 분명 거기서도 장난끼 가득한 눈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살짝 긴장도 했겠지.
어쩌다 그리 되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내 대답이다. 간단하다. 실은 '엉겁결에' 다.
엉겁, 끈끈한 물건이 마구 달라붙어있는 상태, 그리고 그 겨를에. 순간 나를 휘감은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의도치 않은 겨를에 그리되었다고.
# by | 2007/01/03 12:50 | 낯선 꿈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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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초스피드 첫키스! =_=;;
전 점심에 짜장면 먹었는데..
이따 오후에 뭐라도 좀 드셔요!
49일간의 연수원...-_-;
지긋지긋했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특히 추운 새벽에 산타러 나갔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
잘 되길 빌어.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늘 이성보다 감정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턴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는 순간이야 말로...
그러니까 화이팅!
아무래도 연수는 핑계고 **인으로의 세뇌과정인듯 하군요...(그 분야에 독보적인 그룹이 S그룹이라고 하더군요.)
퍼플 / 해병대니 행군이니, 싫어요 싫어.
Dummy / 네, 그렇단 얘기입니다
Nariel / 농담같지 않습니다.
고공강하 / 오라버니도 화이팅이오
뇌를씻어내자 / 진짜 그렇게 돌아오면 어쩌죠?
카제 / 뭐, 그렇긴 하죠
행인1 / 금융권이라더군요
시리우스 / 맞아요 너무 길어요
라엘 / 달콤하죠 아주.
sang / 엉겁결. 좋은 단어에요
Pooh- / 네. 고맙습니다.
비공개 / 어쩐지 쑥쓰. 그러니까 빨리 나아서 얼굴을 보여달란 말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