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23일
에스빠냐 여행기 - 론다, 눈이 웃는 풍경
아침을 깨우는 성당의 종소리가 참 듣기 좋다. 아직도 세탁비누 냄새가 남아있는 하얀 배갯닛에 코를 묻고 멀리까지 울리는 종소리를 듣는다. 이야기책 안에 들어와있는 기분이다. 포근하고 상쾌하고 내가 주인공인 것 같은 기분. 알 수 있어?
천천히 기지개를 하고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 젖은 머리로 배낭을 뒤집어 탈탈 털고 새로이 짐정리를 한다. 체크아웃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아침을 먹어볼까. 가장 가까운 Plaza에 있는 식당에서 크로와상과 햄, 까페 콘레체(cafe con leche / 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를 주문한다. 일상에 묻혀있을 때는 언제나 잠이 모자라고 정신이 없어 아침식사는 사치였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면 아침을 꼭꼭 챙겨먹는다. 하루를 온종일 즐겁게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오늘의 아침식사. 떠오르는 해가 커피잔에 빛을 더하고 부드럽게 부서지는 크로와상 부스러기를 입에 잔뜩 묻히고는 배시시 웃었다. 좋구나야. 더 이상의 감상은 군더더기다.

부산한 녀석. 꼬르도바 호스텔의 강아지 [FZ20]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커다란 십킬로그램 배낭을 매고 산타크루즈의 골목들을 돌아 미처 보지 못한 Murillo의 정원을 둘러본다. 한가로운 이 정원에는 콜럼버스의 출항을 기념하는 탑이 서있다. 배낭이 무거워 벤치에 앉아서 한참동안 탑끝을 바라보았다.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내내 신문을 본다.

골목. 언제 또 걸어보나 [FZ20]

무릴로의 정원 [FZ20]

콜롬버스 기념탐 [FZ20]
터미널로 가서 론다행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국인 여행자 두명을 만났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한달동안 스페인을 여행중이라는 씩씩한 언니와 어눌한 말투의 갓 제대한 경상도 총각. 이 언니와 총각은 우연히 2주전에 만났는데 경상도 총각이 하도 어리버리해서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데리고 다니는 중이라고 한다. 호호. 진짜 좀 어리버리하더라. 바르셀로나에서 헤어져야하는데 벌써부터 혼자 어떻게 다닐지 한걱정이다. 어쨌든 나는 론다까지 말동무가 생긴 셈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짜 롤렉스 시계를 파려는 장사꾼이 우리에게 접근한다. 살 생각은 없지만 심심해서 한참 그를 붙잡고 놀았다. 주머니에서 천원짜리를 꺼내 보여주면서 이게 얼마냐고 묻는데 1유로 정도 된다고 얘기해주니 무척 실망하는 표정을 짓더군.
짐칸에 배낭을 밀어넣고 출발. 론다까지 가는 버스는 그야말로 완행이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참 잘도 달린다. 그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바깥 풍경이 가히 그림책이었기 때문이었다. 황금 들판에 솟은 검은 황소 간판도 보고, 끝도없이 펼쳐진 목화밭이 나오기도 하고, 양떼가 놀고 있는 풍경도 본다. 완만한 구릉이 펼쳐진 들판의 풍경이 새삼 낯설다. 산이 보이지 않는다니 여기는 이국, 안달루시아다. 여유라는 단어가 둥실 떠다닌다.

론다로 가자 [FZ20]

차장 밖으로, 양떼 벌판 [FZ20]
세시가 다 되어 버스는 론다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배가 너무 고파 우선은 셋이서 제일 처음 나오는 광장 인근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빠에야와 샐러드로 허기를 달랜다. 빠에야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 저녁 안달루시아의 끝으로 이동한다는 두명과 헤어져 각자의 갈 길을 간다. 역시나 행운을 빌어주는 걸 잊지 않는다.
론다에서는 빠라도르(옛성이나 수도원 등을 개조해 호텔로 운영하는 스페인 최고급 숙소. 언제나 그 지역의 Best View를 자랑한다)에서 묵는 사치를 부려볼랬더니 룸이 없다네. 그래서 론리에서 강력추천한 숙소를 또 열심히 찾아갔더니 역시 방이 없단다. 아아, 점점 가방이 무거워지는데. 다시 낑낑대고 올라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호스텔에 그냥 짐을 푼다. 에스빠냐 광장과 가까워 돌아다니긴 좋을 것 같다. 싱글 1박에 17유로라니 방값도 싸고. 가방을 내려놓으니 정말 살 것 같다. 휴우, 이제 다시 가벼운 몸으로 나가볼까.

이곳이 론다. 그 아름다운 곳과 첫대면 [T3, 후지 리얼라 100]
숙소에서 나와 누에보 다리 위에 서는 순간, 그 절벽 위의 마을 풍경이 드러나는 순간에 나는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알았다. 론다에 오지 않았다면, 이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풍광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손바닥만큼 나는 더 못된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얗게 칠해진 집들과 좁은 골목, 낡고 소박한 창문이 나를 향해 열려있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협곡에 쌓아올려 두 마을을 하나로 이어주는 누에보 다리를 건너 우선은 더 오래된 마을 쪽으로 간다. 마을을 헤집다가 론다의 성곽을 따라 한바퀴 돌아올 생각이다. 그리고 누에보 다리에 떨어지는 선셋을 봐야지.

누에보 다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FZ20]

론다는 저렇게 두개의 마을이 협곡에 놓인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구 [FZ20]

하얀 집, 골목, 긴 그림자 [T3, 후지 리얼라 100]

열린 창문 [FZ20]
발길이 머문 곳은 La Casa del Rey Moro, 모로네 집이었다. 예전 무슬림 왕의 집인데 절벽 위에 세워진 이 곳은 절벽위의 정원과 협곡아래까지 파진 갱도로 유명하다. 비상 탈출구이자 군사적 목적이었단다. 절벽 위의 정원은 몬쥬익을 설계한 19세기 말의 가장 훌륭한 정원 설계자였던 프랑스인 포헤스티에의 작품이란다.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아찔한 협곡이 끝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잡아 끌었던 것은 절벽 위부터 지그재그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면 결국 절벽 아래 협곡의 바닥까지 데려다주는 갱도였다.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 만들어진 이 갱도를 구경하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중간중간 약한 백열등만 밝혀진 지하 갱도를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내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지는걸 들으며 내려가는데 처음엔 너무 무서운거라. 이 어둡고 가파른 계단에서 구르면 아무도 모를텐데..하는 생각도 들고. 그치만 뭐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랴. 좋아! 가는거야!
중간중간 무기창고도 나오고 비밀의 방도 나오고 암튼 지그재그 20분은 족히 내려갔나보다. 마지막엔 너무 긴장했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그리고 나는 맡았다. 물냄새를. 빛이 쏟아지는 구멍으로 나가니 협곡의 바닥에 초록색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저 꼭대기 절벽 위에서부터 여기까지 굴을 뚫은 오스만의 왕도 대단하지만, 여길 용감하게 혼자 내려온 나도 대견했다. 꺄아, 인디아나 존스같아! (그리고 5분쯤 혼자 감탄하고 났더니 저길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이내 울고 싶어졌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믿는다)

La Casa del Rey Moro [FZ20]

역시, 모로네 집 [FZ20]

반대편에서 바라본 정원, 뷰가 끝내주지 [T3, 후지 리얼라 100]

정원에서 본 뷰 [FZ20]

이런 갱도를 이십분 홀로 내려간다고 [FZ20]

구멍으로 나오면, 협곡의 바닥. [FZ20]
어드벤처에서 빠져나와 다시 길을 간다. 절벽을 따라 만든 공원을 지나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엄지를 치켜들게 하는 성당에도 들러보고, 아랍식 목욕탕도 구경하고 오래된 론다의 성곽을 따라 타박타박 걸었다. 아까 갱도의 여파로 다리가 좀 땡기긴 했지만 발걸음 만큼은 춤을 추듯 가벼웠다. 멀리 조랑말이 뛴다. 진짜 말이다. 그렇게 성곽을 따라 계속 걸으면 절벽에 붙은 공원들이 나오고 그것은 다시 에스빠냐 광장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들을 만난다. 그리고 파노라마 포인트라고 써있는 곳에서 누에보 다리의 일면을 만날 수 있다.
햇빛이 너무나 눈부신 완전한 역광. 그 눈부심에 실눈을 뜨고 누에보 다리를 바라본다. 반대편에서 보는 풍경이 훨씬 멋질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어쨌든 지금 이 모습도 충분히 멋지다. 굉장하다. 협곡의 아래부터 저 다리를 쌓아 올리는데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었을까. 과연, 인간의 인내심이란 대단해.

성당의 안뜰 [T3, 후지 리얼라 100]

안뜰의 끝은 절벽이고, 이런 모습이 보인다 [T3, 후지 리얼라 100]

절벽에 인접한 낡은 건물 [FZ20]

절벽 따라 걷자 [FZ20]

론다, 아랫 마을 [FZ20]

성당길 [T3, 후지 리얼라 100]

Entrada. 입구 [FZ20]

하얗고 노란 골목 [FZ20]

접시 가게 [FZ20]

낡은 성당 [FZ20]

자주 만나는 Holy Beauty [FZ20]

빨간 자동차가 있는 골목 [FZ20]

성곽을 따라 걷자 [T3, 후지 리얼라 100]

풍경도 봐야지 [T3, 후지 리얼라 100]

깨진 가로등 [FZ20]

내려가기도 하고 [FZ20]

다리도 건너고 [T3, 후지 리얼라 100]

또 내려가고 [FZ20]

다리 밑을 지난다 [FZ20]

절벽 옆길 [FZ20]

협곡 아래 테라스[T3, 후지 리얼라 100]

드디어 만나다. 누에보 다리 [T3, 후지 리얼라 100]

바라보다 [FZ20]

눈부시다 [FZ20]
누에보 다리의 완벽한 뷰포인트는 분명 반대편의 절벽 아래에 있을 것 같았다. 세시간을 내내 걸어다녔음에도 누에보 다리에 내리는 석양을 놓칠 수는 없었다. 아까 다리 건너편에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길을 본 것도 같다. 조금 위험해보이는 절벽의 비탈길을 지그재그로 길게 내려가다보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관광객은 찾지 않는, 부지런하고 호기심많은 배낭족들만이 찾아오는 완벽한 뷰포인트가 있었다.
"hola! Panorama Great!" 라고 삐뚤삐뚤 써놓은 허름한 집에 한 아저씨가 벤치에 누워있다. 말이 있는 걸로 봐서 아마 관광객을 말에 태우는 걸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내가 'Hola' 인사를 건내니 아래쪽으로 가라고 가리킨다. 집 옆길로 살금살금 내려가니 와아. 와아. 와아. 나는 그저 입을 벌리고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누에보 다리의 전경과 절벽 위의 집들이 한눈에 보이는 파노라마. 숨을 훅 들이마신다. T3를 꺼내 사진을 찍고 셀프컷도 좀 찍으며 기분을 내었다.
저 아래 무너진 성채 인근으로 더 내려간다. 그 곳은 더 완벽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곳에 나올 법한 장관이었다. 그냥 털썩 주저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 곳을 찾아냈다는 뿌듯함을 공감하고 있는 몇몇의 여행자들은 서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딱 다섯명이었다. 옆자리 미국인 커플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준다. 외국인들은 내가 사진을 찍어주면 항상 엄지를 치켜들며 Great! Thank you!를 연발한다. 사진을 너무 잘 찍어줬다고. 근데 그게 아니라 당신들이 너무 사진을 못찍는 것이지. 목을 자르거나 뒷 배경 다 나오게 한다고 사람을 성냥개비만하게 넣거나. 줌은 어따쓰려는 것인지. 후후. 암튼 그 커플도 내가 찍어준 사진에 무척 흡족해했다.
좀 있으면 해가 질 것이다. 저녁 8시 해가 질 때까지 이 풍경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시원한 바람과 절경에 넋을 놓고 있어도 좋을 것이다. 다섯명의 조용한 시간을 방해한 것은 두명의 한국 남자들이었다. 선셋이 시작되기 직전 시간도 잘 맞춰 절벽길을 헤치고 내려온다. 내가 인사를 건내니 너무 반가워한다. 한국 사람 참 오랫만에 만났다면서. 이 두명의 한국인은 형제였다. 안달루시아만을 두달째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세 명의 한국인과 미국인 커플과 독일인 커플들은 그렇게 같이 해지는 것을 봤다. 해가 넘어간다. 절벽이 더욱 붉게 빛나고 누에보 다리의 색이 짙어진다.

절벽 위의 마을 [FZ20]

둘 중 좋은 사진을 못고르겠다 [FZ20]

비탈을 내려간다 [FZ20]

오- 뭔가 보일 듯! [FZ20]

신났어! [FZ20]

누에보 다리 [T3, 후지 리얼라 100]

절벽, 누에보 다리 [T3, 후지 리얼라 100]

더 내려가 볼까 [T3, 후지 리얼라 100]

무너진 성곽, 부지런한 여행자들 [T3, 후지 리얼라 100]

나무 [FZ20]

미국 친구들이 찍어줌 [FZ20]

좀 더 멀리 [T3, 후지 리얼라 100]

해가 진다 [T3, 후지 리얼라 100]
엉덩이의 먼지를 탈탈 털고 일어나니 형제는 다시 산비탈 저 아래까지 내려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그쪽에서 먼저 술자리를 제안했다. 열시에 에스파냐 광장에서 만나요. 공원에서 술 한잔 합시다.
나는 다시 절벽의 오솔길을 기어올라 내일 그라나다로 가는 기차표를 사러 렌뻬역(기차역)으로 향했다. 꽤나 걸어야하지만 론다는 걷기 좋은 동네다.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다. 킥킥 웃음이 나왔다. 그래, 여기는 전세계에서 햇살만큼은 최고인 안달루시아니까. 기차역 앞에는 무지무지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새 울음소리가 엄청 시끄럽다. 새똥이 뚝뚝 떨어져서 비잉 둘러가야했다니까.
기차표를 사러왔는데 창구가 텅 비었다. 분명 불도 켜져있고 예매도 가능한 것 맞는데 사람은 어딜 간 거냐. 이리저리 돌아다녀보니 창구 아저씨가 플랫폼에서 친구랑 수다 중이다. 아저씨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론다까지 말동무가 되어줬던 그 언니와 총각을 다시 만났다. 8시 25분 기차인데 50분이 연착된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란다. 우선은 수다떠는 아저씨를 붙잡고 '티켓 티켓' 했더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창구로 돌아간다. 내일 아침 8시 50분 그라나다행 기차 무사히 예약. 플랫폼에서 그들에게 다시 한번 행운의 인사를 건내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간다.

불이 켜진다 [FZ20]

나는 이 황혼의 시간이 제일 좋더라 [FZ20]
가는 길에 눈여겨 봤던 마트에 들러 맥주와 감자칩과 오렌지와 사과를 샀다. 후후. 일종의 포트럭 파티네. 이게 오늘 저녁 파티 메뉴다. 해가 완전히 지고 깜깜해지니 날이 급속도로 추워진다. 역시 높은 곳에 있는 동네라 그런가. 숙소에 들어가 긴팔 자켓을 꺼내 입고 사과와 오렌지를 씻어 에스파냐 광장에 가니 형제도 저쪽 어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셋이서 투우장 옆 토로소 광장 한켠의 잔디밭에 신문지를 펴고 앉아 조촐한 여행자 파티를 벌였다. 나는 맥주와 감자칩과 오렌지와 사과를 내놓았고 형제들은 산미구엘과 피스타치오를 내놓는다. 쌀쌀한 공원 잔디밭에 둘러앉아 사과를 깨물고 맥주를 먹는 기분, 최고였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며 우리에게 엄지를 치켜보인다. 우리 역시 손을 들어 화답했다. 현빈 현준 형제(모두 외자 이름이고 빈씨가 형이다. 빈씨는 이름은 같은 꽃소년 현빈 때문에 피해가 막심할 것 같았다)중 준씨는 독일에서 체류 중이고 빈씨가 놀러와 둘이 여행중이라고 했다. 보기에 좋더라. 셋이 이런저런 여행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렇게 길에서 만난 이들과 바닥까지 솔직한 이야기가 가능하다니 여행은 신기하기도 하지.

토로소 광장 [FZ20]
준씨가 여행이 왜 좋냐고 묻는다. 글쎄 왜일까나. 아무도 날 모르고, 모든 걸 잊고 다시 새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고 했더니 그런건 도피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럼, 정정하기로 하죠.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서요.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가장 연장자인 빈씨가 맥주가 다 떨어지자 와인 한잔을 쏘기로 한다. 잔디밭 자리를 정리하고 아직 영업을 하는 술집을 간신히 하나 찾아내어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 한잔씩을 나눴다. 이야기는 또 계속되고 시간은 어느 새 자정을 삼십분이나 넘기고 있었다.
에스빠냐 광장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늘 그렇듯 행운을 빌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뒤돌아 각자의 여행을 계속한다. 그게 여행 친구다.
기분 좋은 피로가 발끝부터 올라왔다. 이 날의 마지막 장면을 남기고 싶어서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찍는다. 예쁘게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순간의 기분은 모조리 기억하고 있으니까.
천천히 기지개를 하고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 젖은 머리로 배낭을 뒤집어 탈탈 털고 새로이 짐정리를 한다. 체크아웃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아침을 먹어볼까. 가장 가까운 Plaza에 있는 식당에서 크로와상과 햄, 까페 콘레체(cafe con leche / 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를 주문한다. 일상에 묻혀있을 때는 언제나 잠이 모자라고 정신이 없어 아침식사는 사치였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면 아침을 꼭꼭 챙겨먹는다. 하루를 온종일 즐겁게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오늘의 아침식사. 떠오르는 해가 커피잔에 빛을 더하고 부드럽게 부서지는 크로와상 부스러기를 입에 잔뜩 묻히고는 배시시 웃었다. 좋구나야. 더 이상의 감상은 군더더기다.

부산한 녀석. 꼬르도바 호스텔의 강아지 [FZ20]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커다란 십킬로그램 배낭을 매고 산타크루즈의 골목들을 돌아 미처 보지 못한 Murillo의 정원을 둘러본다. 한가로운 이 정원에는 콜럼버스의 출항을 기념하는 탑이 서있다. 배낭이 무거워 벤치에 앉아서 한참동안 탑끝을 바라보았다.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내내 신문을 본다.

골목. 언제 또 걸어보나 [FZ20]

무릴로의 정원 [FZ20]

콜롬버스 기념탐 [FZ20]
터미널로 가서 론다행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국인 여행자 두명을 만났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한달동안 스페인을 여행중이라는 씩씩한 언니와 어눌한 말투의 갓 제대한 경상도 총각. 이 언니와 총각은 우연히 2주전에 만났는데 경상도 총각이 하도 어리버리해서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데리고 다니는 중이라고 한다. 호호. 진짜 좀 어리버리하더라. 바르셀로나에서 헤어져야하는데 벌써부터 혼자 어떻게 다닐지 한걱정이다. 어쨌든 나는 론다까지 말동무가 생긴 셈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짜 롤렉스 시계를 파려는 장사꾼이 우리에게 접근한다. 살 생각은 없지만 심심해서 한참 그를 붙잡고 놀았다. 주머니에서 천원짜리를 꺼내 보여주면서 이게 얼마냐고 묻는데 1유로 정도 된다고 얘기해주니 무척 실망하는 표정을 짓더군.
짐칸에 배낭을 밀어넣고 출발. 론다까지 가는 버스는 그야말로 완행이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참 잘도 달린다. 그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바깥 풍경이 가히 그림책이었기 때문이었다. 황금 들판에 솟은 검은 황소 간판도 보고, 끝도없이 펼쳐진 목화밭이 나오기도 하고, 양떼가 놀고 있는 풍경도 본다. 완만한 구릉이 펼쳐진 들판의 풍경이 새삼 낯설다. 산이 보이지 않는다니 여기는 이국, 안달루시아다. 여유라는 단어가 둥실 떠다닌다.

론다로 가자 [FZ20]

차장 밖으로, 양떼 벌판 [FZ20]
세시가 다 되어 버스는 론다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배가 너무 고파 우선은 셋이서 제일 처음 나오는 광장 인근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빠에야와 샐러드로 허기를 달랜다. 빠에야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 저녁 안달루시아의 끝으로 이동한다는 두명과 헤어져 각자의 갈 길을 간다. 역시나 행운을 빌어주는 걸 잊지 않는다.
론다에서는 빠라도르(옛성이나 수도원 등을 개조해 호텔로 운영하는 스페인 최고급 숙소. 언제나 그 지역의 Best View를 자랑한다)에서 묵는 사치를 부려볼랬더니 룸이 없다네. 그래서 론리에서 강력추천한 숙소를 또 열심히 찾아갔더니 역시 방이 없단다. 아아, 점점 가방이 무거워지는데. 다시 낑낑대고 올라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호스텔에 그냥 짐을 푼다. 에스빠냐 광장과 가까워 돌아다니긴 좋을 것 같다. 싱글 1박에 17유로라니 방값도 싸고. 가방을 내려놓으니 정말 살 것 같다. 휴우, 이제 다시 가벼운 몸으로 나가볼까.

이곳이 론다. 그 아름다운 곳과 첫대면 [T3, 후지 리얼라 100]
숙소에서 나와 누에보 다리 위에 서는 순간, 그 절벽 위의 마을 풍경이 드러나는 순간에 나는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알았다. 론다에 오지 않았다면, 이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풍광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손바닥만큼 나는 더 못된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얗게 칠해진 집들과 좁은 골목, 낡고 소박한 창문이 나를 향해 열려있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협곡에 쌓아올려 두 마을을 하나로 이어주는 누에보 다리를 건너 우선은 더 오래된 마을 쪽으로 간다. 마을을 헤집다가 론다의 성곽을 따라 한바퀴 돌아올 생각이다. 그리고 누에보 다리에 떨어지는 선셋을 봐야지.

누에보 다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FZ20]

론다는 저렇게 두개의 마을이 협곡에 놓인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구 [FZ20]

하얀 집, 골목, 긴 그림자 [T3, 후지 리얼라 100]

열린 창문 [FZ20]
발길이 머문 곳은 La Casa del Rey Moro, 모로네 집이었다. 예전 무슬림 왕의 집인데 절벽 위에 세워진 이 곳은 절벽위의 정원과 협곡아래까지 파진 갱도로 유명하다. 비상 탈출구이자 군사적 목적이었단다. 절벽 위의 정원은 몬쥬익을 설계한 19세기 말의 가장 훌륭한 정원 설계자였던 프랑스인 포헤스티에의 작품이란다.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아찔한 협곡이 끝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잡아 끌었던 것은 절벽 위부터 지그재그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면 결국 절벽 아래 협곡의 바닥까지 데려다주는 갱도였다.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 만들어진 이 갱도를 구경하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중간중간 약한 백열등만 밝혀진 지하 갱도를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내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지는걸 들으며 내려가는데 처음엔 너무 무서운거라. 이 어둡고 가파른 계단에서 구르면 아무도 모를텐데..하는 생각도 들고. 그치만 뭐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랴. 좋아! 가는거야!
중간중간 무기창고도 나오고 비밀의 방도 나오고 암튼 지그재그 20분은 족히 내려갔나보다. 마지막엔 너무 긴장했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그리고 나는 맡았다. 물냄새를. 빛이 쏟아지는 구멍으로 나가니 협곡의 바닥에 초록색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저 꼭대기 절벽 위에서부터 여기까지 굴을 뚫은 오스만의 왕도 대단하지만, 여길 용감하게 혼자 내려온 나도 대견했다. 꺄아, 인디아나 존스같아! (그리고 5분쯤 혼자 감탄하고 났더니 저길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이내 울고 싶어졌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믿는다)

La Casa del Rey Moro [FZ20]

역시, 모로네 집 [FZ20]

반대편에서 바라본 정원, 뷰가 끝내주지 [T3, 후지 리얼라 100]

정원에서 본 뷰 [FZ20]

이런 갱도를 이십분 홀로 내려간다고 [FZ20]

구멍으로 나오면, 협곡의 바닥. [FZ20]
어드벤처에서 빠져나와 다시 길을 간다. 절벽을 따라 만든 공원을 지나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엄지를 치켜들게 하는 성당에도 들러보고, 아랍식 목욕탕도 구경하고 오래된 론다의 성곽을 따라 타박타박 걸었다. 아까 갱도의 여파로 다리가 좀 땡기긴 했지만 발걸음 만큼은 춤을 추듯 가벼웠다. 멀리 조랑말이 뛴다. 진짜 말이다. 그렇게 성곽을 따라 계속 걸으면 절벽에 붙은 공원들이 나오고 그것은 다시 에스빠냐 광장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들을 만난다. 그리고 파노라마 포인트라고 써있는 곳에서 누에보 다리의 일면을 만날 수 있다.
햇빛이 너무나 눈부신 완전한 역광. 그 눈부심에 실눈을 뜨고 누에보 다리를 바라본다. 반대편에서 보는 풍경이 훨씬 멋질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어쨌든 지금 이 모습도 충분히 멋지다. 굉장하다. 협곡의 아래부터 저 다리를 쌓아 올리는데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었을까. 과연, 인간의 인내심이란 대단해.

성당의 안뜰 [T3, 후지 리얼라 100]

안뜰의 끝은 절벽이고, 이런 모습이 보인다 [T3, 후지 리얼라 100]

절벽에 인접한 낡은 건물 [FZ20]

절벽 따라 걷자 [FZ20]

론다, 아랫 마을 [FZ20]

성당길 [T3, 후지 리얼라 100]

Entrada. 입구 [FZ20]

하얗고 노란 골목 [FZ20]

접시 가게 [FZ20]

낡은 성당 [FZ20]

자주 만나는 Holy Beauty [FZ20]

빨간 자동차가 있는 골목 [FZ20]

성곽을 따라 걷자 [T3, 후지 리얼라 100]

풍경도 봐야지 [T3, 후지 리얼라 100]

깨진 가로등 [FZ20]

내려가기도 하고 [FZ20]

다리도 건너고 [T3, 후지 리얼라 100]

또 내려가고 [FZ20]

다리 밑을 지난다 [FZ20]

절벽 옆길 [FZ20]

협곡 아래 테라스[T3, 후지 리얼라 100]

드디어 만나다. 누에보 다리 [T3, 후지 리얼라 100]

바라보다 [FZ20]

눈부시다 [FZ20]
누에보 다리의 완벽한 뷰포인트는 분명 반대편의 절벽 아래에 있을 것 같았다. 세시간을 내내 걸어다녔음에도 누에보 다리에 내리는 석양을 놓칠 수는 없었다. 아까 다리 건너편에 아래로 내려가는 작은 길을 본 것도 같다. 조금 위험해보이는 절벽의 비탈길을 지그재그로 길게 내려가다보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관광객은 찾지 않는, 부지런하고 호기심많은 배낭족들만이 찾아오는 완벽한 뷰포인트가 있었다.
"hola! Panorama Great!" 라고 삐뚤삐뚤 써놓은 허름한 집에 한 아저씨가 벤치에 누워있다. 말이 있는 걸로 봐서 아마 관광객을 말에 태우는 걸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내가 'Hola' 인사를 건내니 아래쪽으로 가라고 가리킨다. 집 옆길로 살금살금 내려가니 와아. 와아. 와아. 나는 그저 입을 벌리고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누에보 다리의 전경과 절벽 위의 집들이 한눈에 보이는 파노라마. 숨을 훅 들이마신다. T3를 꺼내 사진을 찍고 셀프컷도 좀 찍으며 기분을 내었다.
저 아래 무너진 성채 인근으로 더 내려간다. 그 곳은 더 완벽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곳에 나올 법한 장관이었다. 그냥 털썩 주저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 곳을 찾아냈다는 뿌듯함을 공감하고 있는 몇몇의 여행자들은 서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딱 다섯명이었다. 옆자리 미국인 커플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준다. 외국인들은 내가 사진을 찍어주면 항상 엄지를 치켜들며 Great! Thank you!를 연발한다. 사진을 너무 잘 찍어줬다고. 근데 그게 아니라 당신들이 너무 사진을 못찍는 것이지. 목을 자르거나 뒷 배경 다 나오게 한다고 사람을 성냥개비만하게 넣거나. 줌은 어따쓰려는 것인지. 후후. 암튼 그 커플도 내가 찍어준 사진에 무척 흡족해했다.
좀 있으면 해가 질 것이다. 저녁 8시 해가 질 때까지 이 풍경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시원한 바람과 절경에 넋을 놓고 있어도 좋을 것이다. 다섯명의 조용한 시간을 방해한 것은 두명의 한국 남자들이었다. 선셋이 시작되기 직전 시간도 잘 맞춰 절벽길을 헤치고 내려온다. 내가 인사를 건내니 너무 반가워한다. 한국 사람 참 오랫만에 만났다면서. 이 두명의 한국인은 형제였다. 안달루시아만을 두달째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세 명의 한국인과 미국인 커플과 독일인 커플들은 그렇게 같이 해지는 것을 봤다. 해가 넘어간다. 절벽이 더욱 붉게 빛나고 누에보 다리의 색이 짙어진다.

절벽 위의 마을 [FZ20]

둘 중 좋은 사진을 못고르겠다 [FZ20]

비탈을 내려간다 [FZ20]

오- 뭔가 보일 듯! [FZ20]

신났어! [FZ20]

누에보 다리 [T3, 후지 리얼라 100]

절벽, 누에보 다리 [T3, 후지 리얼라 100]

더 내려가 볼까 [T3, 후지 리얼라 100]

무너진 성곽, 부지런한 여행자들 [T3, 후지 리얼라 100]

나무 [FZ20]

미국 친구들이 찍어줌 [FZ20]

좀 더 멀리 [T3, 후지 리얼라 100]

해가 진다 [T3, 후지 리얼라 100]
엉덩이의 먼지를 탈탈 털고 일어나니 형제는 다시 산비탈 저 아래까지 내려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그쪽에서 먼저 술자리를 제안했다. 열시에 에스파냐 광장에서 만나요. 공원에서 술 한잔 합시다.
나는 다시 절벽의 오솔길을 기어올라 내일 그라나다로 가는 기차표를 사러 렌뻬역(기차역)으로 향했다. 꽤나 걸어야하지만 론다는 걷기 좋은 동네다.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다. 킥킥 웃음이 나왔다. 그래, 여기는 전세계에서 햇살만큼은 최고인 안달루시아니까. 기차역 앞에는 무지무지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새 울음소리가 엄청 시끄럽다. 새똥이 뚝뚝 떨어져서 비잉 둘러가야했다니까.
기차표를 사러왔는데 창구가 텅 비었다. 분명 불도 켜져있고 예매도 가능한 것 맞는데 사람은 어딜 간 거냐. 이리저리 돌아다녀보니 창구 아저씨가 플랫폼에서 친구랑 수다 중이다. 아저씨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론다까지 말동무가 되어줬던 그 언니와 총각을 다시 만났다. 8시 25분 기차인데 50분이 연착된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란다. 우선은 수다떠는 아저씨를 붙잡고 '티켓 티켓' 했더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창구로 돌아간다. 내일 아침 8시 50분 그라나다행 기차 무사히 예약. 플랫폼에서 그들에게 다시 한번 행운의 인사를 건내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간다.

불이 켜진다 [FZ20]

나는 이 황혼의 시간이 제일 좋더라 [FZ20]
가는 길에 눈여겨 봤던 마트에 들러 맥주와 감자칩과 오렌지와 사과를 샀다. 후후. 일종의 포트럭 파티네. 이게 오늘 저녁 파티 메뉴다. 해가 완전히 지고 깜깜해지니 날이 급속도로 추워진다. 역시 높은 곳에 있는 동네라 그런가. 숙소에 들어가 긴팔 자켓을 꺼내 입고 사과와 오렌지를 씻어 에스파냐 광장에 가니 형제도 저쪽 어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셋이서 투우장 옆 토로소 광장 한켠의 잔디밭에 신문지를 펴고 앉아 조촐한 여행자 파티를 벌였다. 나는 맥주와 감자칩과 오렌지와 사과를 내놓았고 형제들은 산미구엘과 피스타치오를 내놓는다. 쌀쌀한 공원 잔디밭에 둘러앉아 사과를 깨물고 맥주를 먹는 기분, 최고였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며 우리에게 엄지를 치켜보인다. 우리 역시 손을 들어 화답했다. 현빈 현준 형제(모두 외자 이름이고 빈씨가 형이다. 빈씨는 이름은 같은 꽃소년 현빈 때문에 피해가 막심할 것 같았다)중 준씨는 독일에서 체류 중이고 빈씨가 놀러와 둘이 여행중이라고 했다. 보기에 좋더라. 셋이 이런저런 여행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렇게 길에서 만난 이들과 바닥까지 솔직한 이야기가 가능하다니 여행은 신기하기도 하지.

토로소 광장 [FZ20]
준씨가 여행이 왜 좋냐고 묻는다. 글쎄 왜일까나. 아무도 날 모르고, 모든 걸 잊고 다시 새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고 했더니 그런건 도피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럼, 정정하기로 하죠.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서요.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가장 연장자인 빈씨가 맥주가 다 떨어지자 와인 한잔을 쏘기로 한다. 잔디밭 자리를 정리하고 아직 영업을 하는 술집을 간신히 하나 찾아내어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 한잔씩을 나눴다. 이야기는 또 계속되고 시간은 어느 새 자정을 삼십분이나 넘기고 있었다.
에스빠냐 광장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늘 그렇듯 행운을 빌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뒤돌아 각자의 여행을 계속한다. 그게 여행 친구다.
기분 좋은 피로가 발끝부터 올라왔다. 이 날의 마지막 장면을 남기고 싶어서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찍는다. 예쁘게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순간의 기분은 모조리 기억하고 있으니까.
# by | 2007/03/23 09:58 | 지구정복자료수집 | 트랙백 | 덧글(1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는 그 '익명성'에서 시작된다는 것. 이건 도피도, 역할회피도 아닌, 그저 순수한 나 자신으로 돌아와 이국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게 아닐까. 나도 그 순간이 그립구나.
오빠의 라이카는 무시무시해서 못 건드리겠어. 나도 갖고 싶다 T3 ! 아니면 T2
잘 보았습니다..
네시아마님 / 빨리 가족 여행 다니세요
테이_ble / 다시 가고 싶어요 ;ㅁ;
jjay / T3도 좋지만 저렴한 똑딱이 카메라도 무지 많더라.
행인1 / :-)
Andrea / 으- 론다. 꿈에 보여요
똘기 / 감사
시리우스 / 여행가야죠!
그리운 / 넵 :-)
비공개 / ;ㅁ; 실명으로 글쓰다간 광고계에서 짤릴지도 몰라요
가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들게하는 사진과 글이에요^^
내년을 기약해야겠습니다.
첫비행 / 런던 파리잖아요 그대신!
It is so impresive story to take all my heart!!!
Tomorrow, I'll go to the Sevilla and Granada~~~
But I should edit my schedule to inclrude Ronda, too...
Well, thanks for the good intro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