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31일
타인의 삶 - 구원의 이야기
'타인의 삶'
3월 31일 시네큐브 광화문
어젯밤에는 천둥 번개가 치면서 세차게 비가 내렸고, 천둥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좋아진 나는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오후에 일어나 짧아진 하루를 만회하듯 나는 극장으로 걸음을 재촉했고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잔뜩 흐렸다. 게다가 뿌연 황사가 밀려온다지. 이 회색빛의 도시가 가끔은 이렇게 답답할 때가 있다.
통일이 되기 전의 동독, 오늘의 서울처럼 뿌옇고 회색이며 답답하다. 우수한 비밀경찰 비즐러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연극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애초에 그들이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조국'에 의심을 살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그저 글을 계속 쓰고 싶고, 무대에 계속 서고 싶은 예술가들. 그러나 그들은 치졸한 개인의 - 그러니까 폭압과 감시의 시대에 권력을 손에 쥔 개인의 욕정과 욕망에 의해 목이 졸린다.
비즐러는 도청장치와 카메라를 통해 두 예술가이자 연인의 삶을 엿본다. 그들이 고민하고 사랑하고 갈등을 겪을 때, 비즐러도 함께 고민하고 사랑하고 갈등한다. 그리고 타인의 삶을 통해 변화가 시작된다.
언뜻보면 비즐러는 크리스타를 사랑하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랑이 무대에 선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의 사랑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을 엿보는 비즐러에게 크리스타는 그녀의 연기를 언제고 지켜보고 싶은 관객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아름답게 웃고, 드라이만과 함께 언제고 사랑하길 바라는. 오히려 비즐러가 진정으로 되고 싶어했고 동조하게 되었던 건 드라이만이 아니었을까. 특히 '빛나는 영혼의 소나타'를 연주하는 드라이만의 피아노 소리에 드라이만 대신 눈물을 흘리는 순간, 그는 그렇게 변했다고 믿는다.
비즐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의지로 드라이만의 자유를 구한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그들의 삶을 통해 비즐러를 구했듯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대가 끝나고, 이제 타인의 삶을 엿보고 감시당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비즐러와 드라이만의 삶은 어디선가 멈춰서 있는 것만 같다. 드라이만은 비즐러가 자신을 구했다는 것을 알고서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굴리기 시작한다. 한동안 쓰지 못했던 펜을 잡고 '빛나는 영혼의 소나타'를 씀으로써 그는 앞으로의 나아가는 의지를 얻는다. hgw xx17에게 바쳐지는 드라이만의 책을 통해 비즐러는 아마 또 한번 구원받을 것이다. hgw xx17로 살았던 이전의 삶까지 말이다.
타인의 삶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내며 서로에게 희망을 보는 그런 이야기라 믿고싶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타인의 삶을 통해 서로를 구원해내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애초에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는다. 이 눈물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런 영화였다. 아마도 한동안 올해 최고 영화의 자리를 지켜낼 것 같다.

3월 31일 시네큐브 광화문
어젯밤에는 천둥 번개가 치면서 세차게 비가 내렸고, 천둥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좋아진 나는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오후에 일어나 짧아진 하루를 만회하듯 나는 극장으로 걸음을 재촉했고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잔뜩 흐렸다. 게다가 뿌연 황사가 밀려온다지. 이 회색빛의 도시가 가끔은 이렇게 답답할 때가 있다.
통일이 되기 전의 동독, 오늘의 서울처럼 뿌옇고 회색이며 답답하다. 우수한 비밀경찰 비즐러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연극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애초에 그들이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조국'에 의심을 살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그저 글을 계속 쓰고 싶고, 무대에 계속 서고 싶은 예술가들. 그러나 그들은 치졸한 개인의 - 그러니까 폭압과 감시의 시대에 권력을 손에 쥔 개인의 욕정과 욕망에 의해 목이 졸린다.
비즐러는 도청장치와 카메라를 통해 두 예술가이자 연인의 삶을 엿본다. 그들이 고민하고 사랑하고 갈등을 겪을 때, 비즐러도 함께 고민하고 사랑하고 갈등한다. 그리고 타인의 삶을 통해 변화가 시작된다.
언뜻보면 비즐러는 크리스타를 사랑하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랑이 무대에 선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의 사랑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을 엿보는 비즐러에게 크리스타는 그녀의 연기를 언제고 지켜보고 싶은 관객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아름답게 웃고, 드라이만과 함께 언제고 사랑하길 바라는. 오히려 비즐러가 진정으로 되고 싶어했고 동조하게 되었던 건 드라이만이 아니었을까. 특히 '빛나는 영혼의 소나타'를 연주하는 드라이만의 피아노 소리에 드라이만 대신 눈물을 흘리는 순간, 그는 그렇게 변했다고 믿는다.
비즐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의지로 드라이만의 자유를 구한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그들의 삶을 통해 비즐러를 구했듯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대가 끝나고, 이제 타인의 삶을 엿보고 감시당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비즐러와 드라이만의 삶은 어디선가 멈춰서 있는 것만 같다. 드라이만은 비즐러가 자신을 구했다는 것을 알고서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굴리기 시작한다. 한동안 쓰지 못했던 펜을 잡고 '빛나는 영혼의 소나타'를 씀으로써 그는 앞으로의 나아가는 의지를 얻는다. hgw xx17에게 바쳐지는 드라이만의 책을 통해 비즐러는 아마 또 한번 구원받을 것이다. hgw xx17로 살았던 이전의 삶까지 말이다.
타인의 삶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내며 서로에게 희망을 보는 그런 이야기라 믿고싶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타인의 삶을 통해 서로를 구원해내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애초에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는다. 이 눈물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런 영화였다. 아마도 한동안 올해 최고 영화의 자리를 지켜낼 것 같다.

# by | 2007/03/31 22:01 | culture | 트랙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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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타인의 삶 : 누가 진정한 양심인가
영화의 처음은 몹시 흥미롭게 전개된다. 슈타시 Stasi 에서도 이름 있는 꽤 유명한 요원인 비즐러가 누군가를 심문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심문과정을 녹음해 학생들에게 그것을 토대로 강의를 한다. 그렇다. 그는 대학교수인 동시에 비밀경찰이다. 처음 이 시퀸스는 몹시 흥미롭다. 강의실과 심문실을 교차 편집해 슈타시의 유능한 요원이 행동이 의심되는 사람을 다루는 요령을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한다. 심문 시간이 너무 길다고 투정하......more
특히 타자기 씬.. ^^
마지막에 드라이만이 비즐러를 찾아갔는데, 왜 그는 다시 돌아왔어야만 했을까요? 같이 영화를 본 어머니께선 비즐러에게 부담을 줄까봐..라고 하시던데~
마지막에 그렇게 한 드라이만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아, 그리고 니야님 덕분에 좋은 영화 알아서 감사드려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답니다.
붉은거미 / 반가워요. 타자기의 붉은 리본이 참 많은 일을 하죠?
기형z / 내리기 전에 얼른 보세요
fantastic / 정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모모 / 네, 희망으로 감동적인 영화는 오랫만이었어요
시리우스 / 꼭 보세요. 놓치지 말구요
djsol / 꼭! movie2day날 수다 떱시다
하루방랑자 / '지켜본다' 는 의미를 계속 두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