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에이터와 사랑을

밤을 샜다.
광고쟁이 인생에서 회사에서 밤새는게 무슨 큰일은 아니지만서도, 게다가 예전처럼 한겨울 명동바닥에서 밤을 새는 것도 아니니 얘기할 껀덕지도 못되지만서도 어쨌든 침대에 편안히 몸을 뉘이지 못하는 고로움. 이란 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나 찬바람이 부는 비오는 겨울밤이라면 더욱 그렇잖아.

새벽 4시쯤인가 5시쯤인가 대략 일이 마무리가 되어 사무실의 조명을 낮추고 회사 휴게실로 숨어들었다. 꽤 널찍한 회사의 휴게실에는 빨갛고 길고 평평한 소파가 있다. 누워자기 좋게 애초에 그런 의도로 샀다고는 하지만 정말 이 소파의 위력은 대단하여 나같이 기럭지가 짧은 사람에게는 두시간 이내의 편안한 수면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라디에이터. 봄여름가을까지 저 구석에 숨어있다가 소파 앞으로 나온지 이제 보름여다. 라디에이터를 켜고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갖고 부들부들한 감촉이 좋은 폴라폴리스 무릎담요를 덮고 누웠다. 우우우웅- 낮게 울리는 컴퓨터의 진동음까지 느껴지는 조용한 새벽. 라디에이터의 온기가 딱 나와 빨간 소파 주위를 감싼다. 그 온기의 자장까지 눈에 훤히 그릴 수 있을 정도의 따뜻함.
마치 라디에이터에게 사랑받는 느낌이다.

이렇게 따뜻한 온기 안에서 나는 포근했지. 저 멀리에는 네 온기의 파장이 닿지 못해서 온전히 나만 그 따뜻함을 고스란히 차지할 수 있었어. 그래서 더 좋았어. 살짝 뜨거울 때도 있었지만 옷이 타버리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거리, 그걸 알고 있었으니 괜찮았어.
오래오래도록 나는 이 온기를 독차지할 줄 알았는데, 잠에서 깨고,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누군가 당신을 건드리니 그만 툭- 하고 꺼져버렸지. 추위에 금방 뒤척이게 돼. 그렇게 쉽게, 그리고 그렇게 빨리 따뜻함은 사라지고. 나는 라디에이터 위에 손을 올려보았지만 차가운 금속성의 냉기만 느껴져 화들짝 놀란다.

부스스 잠에서 깬다.
라디에이터 바퀴를 굴려 저 한쪽으로 밀어놓는다.


by 니야 | 2007/11/23 10:16 | 낯선 꿈 | 트랙백 | 덧글(10)

트랙백 주소 : http://fruitsmilk.egloos.com/tb/349832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7/11/23 10:53
글에서 쓸쓸함이 단박에 묻어나네요... 요즈음 확실히 마음을 터놓고 살만한 상대가 줄어서 저도 외롭습니다..
Commented by movie at 2007/11/23 11:47
어쩜 이리 글을 이쁘게 쓰노??
Commented by 행인1 at 2007/11/23 12:28
오늘도 니야님의 따뜻한 글 잘 읽고 가요. 늘 건강하시길~
Commented at 2007/11/23 13: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버섯공주 at 2007/11/23 13:33
곁을 더듬게 되는 글이예요. 감기 조심하세요.
Commented by 사은 at 2007/11/23 17:04
영국의 컵수프 광고 중에, 따끈한 컵수프를 한 모금 마시면 긴 팔이 달린 털뭉치 동물이 폴짝 내려와서 꼬오옥 사람을 안아주는 시리즈 광고가 있었었어요. (요런 동물: http://www.visit4info.com/details.cfm?adid=13685) 괜히 그 생각이 나네요. 뭐든, 피곤하고 조금 춥고 할 때 따땃하게 해주는 게 있으면, 정말 좋은데. 정말 좋은데.
Commented by 그대로두기 at 2007/11/23 21:52
라디에이터의 그 타닥타닥 하는 시동 소리가 너무 정겹습니다.
저것이 살아 있는 것 아닐까 싶은.
냉장고의 느리고 거친 숨소리도 만만찮군요.
Commented by 시리우스 at 2007/11/24 22:37
movie님 덧글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쓸쓸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글,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at 2007/11/25 02: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니야 at 2007/11/26 14:26
은혈의륜 / 친구가 최고
movie / 부끄럽다 아이가
행인1 / 네- 행인1님도 건강 챙겨요
비공개1 / 제일 좋은건 따땃따땃 윙윙~ 이 아니라 콩닥콩닥이라고.
버섯공주 / 감기, 싫어요
사은 / 포옹. 그게 좋아요
그대로두기 / 근데 왜 에어컨은 정이 안갈까요
시리우스 / 오랫만이에요
비공개2 / 오늘 보겠네요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