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게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최신작' 과 '박건형 컴백' 이라는 문구만으로도 객석을 꽉 차게 만들 법한 뮤지컬 '뷰티풀 게임'
그냥 먹고 들어가는 것이 있었고, 나도 그걸 믿고 갔다. 그리고 후회할 일은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두운 뮤지컬이었지만, 결코 그 어두움이 재미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갈등이 격하던 시절의 아일랜드. 축구의 꿈을 꾸는 한 무리의 고교생들이 있었고 그 꿈에 가까이 갔지만,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청춘들은 의지와는 다르게 죽고 다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며 테러리스트가 된다. 시대의 그림자를 한 재능있는 축구 지망생과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축구팀 친구들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1막은 그야말로 테스토스테론의 발산. It's a Wonderful game, It's a Magical game 이라는 후렴구가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 힘찬 응원가와 함께 시작되는 무대는 잔근육이 아름다운 남자 배우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실제로 옷을 많이 벗는다) 축구의 여러 동작들을 재구성한 안무는 현란하면서도 힘이 넘치고, 축구 게임을 춤으로 연출한 것도 매우 긴장감있고 흥미진진하다. 배우들의 합이 매우 중요한 축구 장면은 그야말로 딱딱 들어맞아 보는 이를 즐겁게했다. 그런 와중에도 2막을 위한 여러가지 설정과 복선을 깔아놓고 갈등구조를 고조시켜 놓는데 그 짜임새가 1막의 흥겨운 에너지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잘 짜여져 있어 '역시' 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약간 느슨한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즐겁게 눈감을만 하다.
1막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결승전 부분. 마지막 결승골을 넣는 순간, 무대 중앙에서 골대가 올라오고 객석을 향해 존(박건형)이 슛을 날리는 그 순간은 정말 무대와 객석 모두 에너지로 끓어 올랐다. 와아- 정말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무대. 게다가 멋진 몸매를 드러내며 옷도 훌렁훌렁 벗어주시니 감격했사와.

이렇게 에너지와 즐거움으로 넘치던 1막은 2막의 결혼식 장면을 지나자마자  바로 캐릭터들을 나락으로 밀어넣기 시작한다. 행복한 결혼을 하는가 싶었던 존과 메리. IRA에 들어간 친구 토마스를 잠시 만났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친구들도 이에 같이 휘말린다. 1막의 즐거움과 에너지는 바로 시대의 갈등에 휩싸인 한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어두워지는지를 보여주는 힘이 된다. 그렇게 밝고 건강했던 청춘들은 감옥에서 무너지며, 도피하고, 총에 맞는다. 2막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교도소 장면. 3층으로 쌓아올린 교도소 감옥안에서 죄수들이 춤을 추고, 존만 홀로 괴로워하다 점점 다른 죄수들과 동화된다. 실루엣만 보이는 어두운 조명과 존을 비추는 붉은색, 그리고 어두운 힘이 넘치는 음악까지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결국 쓰러지고 마는 인물들로 무대는 막을 내린다. 1막의 청춘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먹먹해지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그 청춘의 밝음은 때론 이렇게 의도치 않게 증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두운 얘기지만 전체적으로 무대는 힘이 넘치고 감동도 있다. 게다가 오랫만에 복귀한 박건형은 역시 펄펄 난다. 스크린과 드라마는 그의 무대가 아니었다. 역시 그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난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 조화도 아주 좋다. 특히 1막에서 축구 장면을 유심히 보라. 그 합이 아주 멋드러진다. 게다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며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도 무대에 힘을 실어준다.

올해가 가기 전에, 무대 위의 축구를 즐기시라. 그리고 청춘의 빛과 운명의 굴레에 대해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뷰티풀게임 홈페이지

by 니야 | 2007/12/05 11:49 | culture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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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esism at 2007/12/05 11:58
크리스마스에 뮤지컬을 보면 좋겠단 생각으로 작년엔 '에비타'를 골랐다가 망쳤고, 올해는 무얼 볼까 고민중인데 마땅한 게 없어요. 이 뮤지컬도 후보로 고르긴 했었는데 카군이 좀 부정적인 듯도 하고. 그런데 언니 글 보니까 다시 후보로 올려야겠네요. 아 정말 무얼 보면 좋을지-
Commented by Ant at 2007/12/05 13:02
아.. 너무 보고 싶은데, 재정사정으로 차마 지르지 못하고 있는데 평들이 너무 잘 나와요.. 어쩜 좋아요.ㅠ.ㅠ
Commented by 니야 at 2007/12/05 13:24
sesism / 알러뷰 비코우즈...괜찮을 듯?
Ant / 지르세요 ;;
Commented by hyangii at 2007/12/05 14:20
두번째 사진이 축구장면중 하나인가요? 무척 잘나왔네요, 멍~하니 보고있어요--;
Commented by 마르스 at 2007/12/05 19:54
이런 보고 싶잖아.
Commented by quiete at 2007/12/06 01:13
혹 알러뷰 비코우즈 보러 오실때 연락주세요. 알러뷰 비코우즈 공연하는 극장 바로 밑에서 연습중이라는-알려뷰 비코우즈 요즘 리허설 중인데 포스터는 비록 촌스럽지만 얼핏 들어본 몇 곡은 좋더군요.:-)
Commented at 2007/12/06 06: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7/12/06 07:48
한국가면 아무래도 알바햇거 뮤지컬이나 좀 보러다녀야 할듯...
Commented by 니야 at 2007/12/06 15:34
hyangii / 네, 축구를 안무로 재구성한 장면 중 하나에요
마르스 / :-)
quiete / 16일날 보러가요!
비공개 / 안타까워서 어째요 ;ㅁ;
은혈의륜 / 응- 언제와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7/12/06 17:28
축구 뮤지컬이였군요.
저는 포스터를 보고 BL물인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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