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야 in France #04

#4. 9월 21일
오르세와 쇼핑과 영화와 유람선

 역시 일찍 자니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서울의 어두운 내 원룸보다 훨씬 밝은 창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숙소의 바로 앞은 성당. 성당의 종소리로 맞이하는 아침은 부드럽고 포근하다. 시트의 바스락거림을 즐기며 뒹굴뒹굴하다 다른 룸메이트들이 모두 씻은 후에 가장 늦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다. 오늘도 역시 크로와상과 쇼콜라와 오렌지주스.
 딱딱한 돌길을 걸으며 시청 앞에서 열리는 아침 시장을 지나 공중전화 부스에 멈춰선다. 부모님께 전화 한통, 그리고 애인에게 전화 한 통.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절실하게 말했었지. 그 마음 전해졌을까 두근두근했는데 전해지지 않았던거야, 돌아와 생각해보면.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기로 한다. 메트로를 갈아타는게 귀찮아 튈트리 역으로 가 정원을 가로지른다. 오르세로 가는 길, 튈트리 정원을 가로 지르면 바로 오르세 앞으로 놓여진 다리를 건널 수 있다. 아침의 튈트리 정원은 한낮의 일광욕을 즐기던 튈트리와 또 달랐다. 알싸한 공기가 너른 정원에 퍼져 흙냄새와 뒤섞인다. 조용하고 기분좋은 공간, 그 많던 오리는 어디로 갔을까.

<아침의 정원 / Lumix LX-2>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보다 동선도 편하고 더 분위기도 좋았다. 내가 인상파 화가들을 좋아하는 탓도 있겠지만 오르세는 그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더 밝고 편하면서도 예술적이다.
 그림들이 전시된 방 곳곳에는 '해외 전시중'이라는 안내 딱지와 함께 빈 벽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아마 그 그림들 '오르세 미술관전' 이라는 이름 하에 한국에서 가있겠지. 아이러니네.
 쇠라의 그림들이 실제로 보니 훨씬 마음에 뭉클하니 와 닿았고, 고흐는 역시 그 꿈틀거리는 붓터치가 손끝을 꿈틀거리게 만든다. 드가는 뭐랄까, 여체의 움직임 특히 발레 페티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었고,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을 직접 본게 가장 감격스러웠다. 오르세 미술관은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오르세 미술관 / Contax T3, 포트라160vc>

<옛날의 기차역 / Contax T3, 포트라160vc>

<고흐의 전시실 / Lumix LX-2>

 

오후가 되어서야 오르세를 빠져나와 생제르망 거리를 향해 걸었다. 그 길, 어찌나 예쁘고 유혹적인 가게들이 많은지. 토이샵에서 스머프 피겨를 지르고 싶은 맘을 겨우 달랬더니 바로 Design이란 가구, 인테리어 샵 발견. 내가 딱 원하던 심플하고 클래식한 그 라디오가 바로 있더라니까. 게다가 생각보다 저렴하여 바로 지르고야 만다. 매우 탐나는 테이블 스탠드도 살까 하다가 너무 무거워 그건 포기하고 뒤돌아 선다. 지금 생각하면 사올걸 그랬나봐.
 또 걷다보니 좋은 향기가 솔솔, 예쁜 비누를 선물용으로 산다. 유명한 세컨드샵도 구경해주고, 사이즈가 다들 너무 커서 실망하고 돌아서고 그렇게 구경하며 걸었다. 낡은 버스에 재밌는 복장을 한 친구들이 악기를 들고 달리다 길에 내려 즉석 연주를 하기도 한다.

<편해보여 / Lumix LX-2>

<유쾌한 스머프 친구들 / Contax T3, 포트라160vc>

<Design / Contax T3, 포트라160vc>

<크레페가 맛있는 거리 / Lumix LX-2>

<셍제르망데프레의 유쾌한 버스 / Contax T3, 포트라160vc>

<유쾌한 연주가 시작되다 / Lumix LX-2>

즐겁고 발랄한 길을 걷다 오데옹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기서 어느 길로 빠지면 맛있는 집이 있다고 그랬던 것 같아 지도를 보며 찾아 가다가 영화 팜플렛 라이브러리라는 정감 있어보이는 샵을 발견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파리에서 발견한 가장 맘에 드는 장소였다. 몇 십년전 영화의 오래되고 낡은 팜플렛부터 그 유명한 까이에뒤시네마 첫권도 있다. 영화관련 서적들과 온갖 잡동사니의 천국이었다. 낡은 영사기가 놓여있는 가게도, 구경하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보고 묵묵히 신문을 읽는 주인 아저씨도 모두 어우러져 이곳은 영화광의 조용한 파라다이스.
 시간가지 않는 곳. 임권택 감독과 아시아 감독의 특집이 실린 영화잡지랑 싸게 파는 아멜리에 콘티북을 집어들었다. 영화감독의 꿈을 꾸는 그를 위해서다. 다시, 시나리오가 쓰고 싶어진다.

<다시 가고 싶은 그 곳 / Contax T3, 포트라160vc>

<낡은 영사기 / Contax T3, 포트라160vc>

<저게 다 영화 팜플렛과 책들 / Contax T3, 포트라160vc>

  예기치 않은 발견에 기분이 좋아져 경쾌하게 인사하고 가게를 빠져나온다. 기분좋은 허기로 추천맛집에 들어가 오늘의 메뉴를 주문했으나 이미 다 솔드아웃(?)이라는군. 그래도 좋았다. 비프를 주문했더니 갈비찜 비스므레한 것과 매쉬드 포테토가 나온다. 김치만 있음 딱이다 싶다. 와인 한잔과 그릇을 싹싹 비웠다. 부들부들 맛나다.
 
 그 길을 따라 (무슨 프린세스인지 프린스하는 길인데) 주욱 걸어 룩상부르크 공원까지 간다. 벤치에서 바게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는 사람들과 의자 위에 앉아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는 사람들, 엉겨붙어 키스하는 연인들. 오후의 공원 풍경이다. 그리고 그 곳에 검은 머리의 이방인이 끼어든다. 의자를 하나 차지하고 앉아 파리에 관한 단상을 끄적대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둘둘둘둘 말려나오는 글씨가 발랄하게 노트 위를 날았다.

<룩상부르크 공원 / Contax T3, 포트라160vc>

<어김없이 등장해주는 셀카 / Contax T3, 포트라160vc>

 팡테옹은 그냥 겉에서 쓰윽 둘러만 보고는 소르본 대학 옆길을 따라 걷는다. 내가 다녔던 신촌의 대학가와는 전혀 달리 조용했고 서점이 많아 부러웠다. 마블 포믹스부터 망가와 피규어가 가득한 ALBUM 매장이 크게 있어 각종 만화책을 구경하고, 그 옆 중고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한다. 'History of Horror Movie'란 멋진 영어서적이 있었는데 고민하다 결국 사지 않았다. 솔직히 좀 후회되네. 표지만 봐도 멋졌는데.
 그리고 강변에 있는 '비포 선셋'에 나왔던 그 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에서 시간을 보낸다. 좁고 깊숙한 서점 안쪽에 놓여있는 작은 피아노, 누군가 앉아 흥겨운 스윙을 연주한다. 종이냄새가 물씬 나는 이 곳이 너무 좋아서 얼굴에 저절로 홍조가 떠올랐다. 대형서점만 살아남아있는 서울은 싫어. 이런 작고 멋진 서점이 널린 파리가 너무너무 부러워. 닉 혼비의 음악 에세이 'Song Book'을 사서 나온다. 작고 가벼운 페이퍼북의 갱지냄새에 취할 것 같다.

<팡테옹 / Contax T3, 포트라160vc>

<기둥의 그늘 / Lumix LX-2>

<대학 옆길 / Contax T3, 포트라160vc>

<코믹스 / Contax T3, 포트라160vc>

<호러무비 / Lumix LX-2>

<사원, 오토바이 / Contax T3, 포트라160vc>

<셰익스피어&컴퍼니 / Contax T3, 포트라160vc>

 서점 앞에 바로 놓여진 다리를 건너면 생 루이섬이다. 섬의 입구에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는 베르띠용이라는 가게가 있다. 늘 줄을 서있는 그 곳에서 바닐라와 망고 2스쿱을 사들고 천천히 핥아먹으며 생 루이를 산책한다. 섬을 가로지르는 가운데 길엔 예쁜 가게들이 즐비하고 정말 파리다운 악세서리 가게도 있다. 수퍼마켓에 들러 사과주스와 밤에 마실 맥주캔을 샀더니 계산대의 주인 아저씨가 '안녕하세요' 라고 한국어로 인사한다. 아주 능숙하게. 삼유로..라며 말해주는 것이 신기신기. 낯선 한국어다.

<생루이의 꽃가게 / Contax T3, 포트라160vc>

 책에 맥주까지 짐이 점점 무거워져 잠시 숙소에 들러 짐들을 던져놓고 나와서는 세느강의 배를 탔다. 바토버스라고 강을 운행하는 버스같은 것. 바토버스 선착장 어디서든 타고 내릴 수 있어 좋잖아. 관광객다운 코스도 즐겨줘야지.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배는 여유있고 유쾌했다. 세느강에는 배를 집삼아 사는 모습들이 자주 보이더군. 강변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이 참 예뻐보인다.

<Batobus / Contax T3, 포트라160vc>

<강변의 연인들 / Lumix LX-2>

<배 위에서 에펠탑 / Lumix LX-2>
 
 시청사 앞 세느강 선착장에서 배를 타 에펠탑을 돌아 생제르망데프레 선착장에서 내린다. 예술의 다리 근처에서 내려주길래 해질무렵 어슴푸레한 다리를 건넌다. 차가 다니지 않는 다리, 그냥 나무로 만든 다리에 털썩 앉아 술을 마시는 떡진 머리 청년들이 인상적이다. 그리고는 아뜰리에와 갤러리가 밀집해있는 거리를 지나며 작품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주 작은 갤러리들이 수십개씩 들어서 있는데 그림들이 참 좋더라. 고전부터 현대미술까지 빛을 발한다. 역시 파리는 뒷골목을 뒤지는 맛이 있다. 걸어야 한다.

<예술의 다리 / Contax T3, 포트라160vc>

<다리 위 / contax T3, 포트라160vc>

<해질 녘 / Contax T3, 포트라160vc>

그렇게 생제르망데프레 거리까지 와서 길거리 화가의 그림들을 구경하고 골목을 구경하고 Sang님이 추천해주신 당통 카페에서 시끄러운 대화 속에 파묻혀 맥주와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맥주 한잔에 볼이 살짝 뜨거워져 오는 것이 오늘도 푹 자겠지. 슬슬 또 걸어서 돌아온다. 밤의 파리는 불빛에 흔들리더라. 다리 위에서 이상한 범선을 만들어놓고 연설하는 기인도 보고, 불빛에 혼자 하얗게 빛나는 노틀담도 본다. 빛이 번지고 강물에 흔들리고.
 밤의 파리는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기에 너무 좋아서, 쉬이 떠나지 못하겠다.

<거리의 그림 / Contax T3, 포트라160v>

<돌길 / Contax T3, 포트라160vc>

<흔들리는 불빛 / Contax T3, 포트라160vc>

<연설 / Contax T3, 포트라160vc>

<번지는 강 / Contax T3, 포트라160vc>
 

by 니야 | 2007/12/13 13:19 | 지구정복자료수집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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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쿨짹 at 2007/12/13 13:29
크 어김없이 등장해주는 셀카가 젤 맘에 들어~~~
Commented by THIRDTYPE at 2007/12/13 13:32
어김없이 등장하는 셀카임에도 볼때마다 놀라는 1人 ㅋㅋㅋ
Commented by 또르키 at 2007/12/13 13:59
아놔 댓글 가득 써놓고 셀카 찾으러 갔더니만... 댓글 사라졌;;;
밥오;;;;;
Commented by sesism at 2007/12/13 14:09
정말이지 프랑스 포스팅의 사진보며 느끼는 거지만 건물이 무척 아름다워요. 다 옛스러워보여서 딱히 어떤게 나이많은 건물인지 모르겠지만 고풍스럽달까요. 우리는 개발만 할 줄 알았지 보존하는 능력은 꽝인데 유럽은 정말 그런거 잘하는듯.
그나저나 2년후쯤 프랑스 여행 계획중인데 언니 때문에 요즘 아주 죽겠습니다 ㅠㅠ
Commented by 빨간구두 at 2007/12/13 18:41
혹시.. 저 흰 곰 인형 말이예요~ 쌔근쌔근 숨쉬면서 자는 곰 아닌가요??

맞는것 같은데..
Commented at 2007/12/13 19: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7/12/14 04:12
갑자기 그냥 고등학교 졸업하고 유럽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Commented by 소라닌 at 2007/12/14 05:27
와우~ 정말 멋져요.. ㅠ.ㅠ;;
인도와는. .어쩜 이리도 틀린지..
Commented by 니야 at 2007/12/14 10:55
쿨짹 / 흑 살빼고 점빼야해요
써드 / 왜! 내가 그렇게 놀라워?
또르키 / 쿠하하하
sesism / 자자, 일년 땡겨보셔요
빨간구두 / 네, 맞아요
비공개 / 어머, 나 나름 깜찍한 표정;;;;
은혈의륜 / 방학도 기니까.
소라닌 / 인도도 멋지다고 기대하는데. 흑-
Commented by 빨간구두 at 2007/12/14 17:11
전 파리갔을때 곰에 관련된 것(인형, 피규어 등등)만 파는집에 갔었는데 얼마전에 팔렸다는거예요~ ㅠ,ㅠ 전 못봤는데 ... 운이 좋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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