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24일
부앙부앙부앙
부앙부앙부앙!
모든 것은 하나의 뭉개진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보름여 전, '바이바이 베스파'라는 만화를 그에게 안겨주며 그녀는 얘기했다. '나는 아무래도 청춘의 뒷좌석을 꼬옥 붙잡고 싶은가봐, 그러니 내가 청춘의 한 페이지를 접는 긴긴 유랑을 떠나기 전에 꼭 한적한 아스팔트를 스쿠터를 타고 달려보고 싶어.'
그는 그러마 하고 기꺼이 약속을 했지만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둘은 주로 아스팔트 한쪽의 인도 구석구석을 두 발로 꼭꼭 밟으며 걸어다녔다. 그것도 물론 좋았지만 언젠가는 그가 모는 스쿠터 뒷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꼬옥 잡고 귓가에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그렇게 이틀에 한번쯤은 생각을 했다.
밤이 되어도 전혀 춥지 않을만한 날씨가 된 어느 날, 머리를 감지 않아 평소와 달리 이상한 두건을 뒤집어 쓰고 외출했던 날이었다. 그녀는 오래된 휴대폰에 장식으로 붙어있는 30만화소 카메라의 힘을 빌려 가증스런 표정을 한채 어느 술집에서 그에게 한장의 뭉개진 사진을 전송했다. 오늘은 딱 달리고 싶은 복장이라면서. 그리고 한참 만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가 막 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우려는 찰나였다.
나, 지금 시동 건다.
4월 중순 답지 않은 한여름의 날씨였다. 낮에 27도까지 올라갔다던가. 새벽의 공기마저도 얇은 티셔츠 한장으로 이겨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가 다시 두건을 쓰고 무음의 환호성을 지르며 기다린지 30분쯤 후,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길을 잘못 들어서 택시들이 시속 150킬로미터로 마구 달려대는 강변북로를 그 조그만 스쿠터로 뽈뽈 거리며 달려왔다고 했다. 스쿠터가 터질까 전전긍긍하면서. 아이고마.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다니 바보같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죽음을 무릅쓰고 와 준 것이잖아. 그녀는 그가 너무 대견하여 하늘색 헬멧을 두손으로 꽈악 잡고 고마움의 박치기를 해주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도록 뺨도 토닥토닥 해주었지. 마음 속으로 '왕자님은 스쿠터를 타고 온다'는 동화책을 새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밝히지 않도록 하겠다.
막상 그의 뒷자리에 올라탔을 때는 조금 걱정도 되었다. 콩닥콩닥 거리는 가슴과 겹치는 뱃살을 들킬까 걱정되어서. 그 속내와는 상관없이 동네 사람들을 깨우지 않도록 소리를 죽이며 스쿠터는 달려나갔다. 그리고 바람에 앞머리가 뒤로 완전히 젖혀졌을 때, 그녀는 이미 완전히 들떠있었다. 신난다 신난다를 연발하며 둘은 어디로 갈까 이래저래 고민을 하다가 서강대교를 넘어 63빌딩이 보이는 여의도 고수부지로 방향을 잡았다.
스쿠터를 타고 밤의 한강을 건너는 일,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 최고였다. 하지만 한밤의 고수부지는 이미 폭주족들에게 시끄럽게 점령당한 후여서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앞바퀴를 들고 뒷바퀴로만 달리는 오토바이의 소음에 놀라 둘은 5분만에 피신을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아마도 조용할 것이라 생각되는 여의도 공원으로 다시 부앙부앙부앙.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사고, 따뜻한 커피와 초코 홈런볼도 챙겼다. 좌석의 아래에 그것들을 챙겨넣고 시동을 다시 거는 순간, 그녀는 이렇게 든든한 뒷자리는 인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규칙대로 하자면 원래는 자전거 이외에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지만 불을 밝히고 서있는 경찰차를 피해 몰래몰래 스쿠터를 몰고서 여의도 공원의 한복판까지 진출했다. 새벽 두시의 여의도 공원은 그야말로 적막하고 아름다웠다. 적당한 나무 아래 스쿠터를 세웠다. '로울러 스케이트 대여' 라고 쓰여진 안내 푯말이 있고 두툼한 나무 벤치가 있는 곳에 말이다.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아무도 없는 새벽의 공원은 마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갑자기 서울이 낯설기만 하다.
나란히 앉아 고개를 올려다보니 공원의 수은등이 보름달처럼 나뭇가지 사이에서 둥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낡은 카메라를 꺼내어 그 둘만의 보름달을 한장, 그리고 그 아래 세워진 청춘의 뒷모습을 닮은 스쿠터를 필름에 박았다. 어두워 사진이 흔들렸을지라도 분명 아름다울거라고 생각했다.
맥주를 따고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틀었다. 문명의 이기란 이렇게 낭만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나보다. 앤소니 앤 더 존슨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음악과 나무와 밤공기와 수은등 불빛과 로울러 스케이트 안내 표지판에 둘러싸인 채 그녀의 긴 유랑에 대해서, 그의 첫 모험에 대해서, 그리고 돌아온 이후의 삶에 대해서, 무엇보다 지금 나란히 앉은 순간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듣는 이 없었지만 살짝 부끄러워졌을지도. 아니면 맥주 때문이었을까. 티셔츠가 감싼 팔에 얕은 소름이 돋을 즈음, 둘은 다시 스쿠터에 올라타고 잃어버린 어른들의 도시와도 같은 주말 새벽 여의도를 달려 다시 길을 거슬렀다. 역시 부앙부앙부앙 하면서. 머리에 한가득 바람냄새와 엷은 휘발유 냄새가 섞여 흥분이 묻어났고, 귀에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달았다.
그녀의 집앞에 스쿠터가 멈춰 섰다. 소원성취하였어. 이렇게 신나는 밤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걸 보면 아마도 이 밤이 이제까지 살아온 중 가장 신나는 밤이었나봐. 그녀는 그의 볼에 솜털처럼 폭신한 뽀뽀를 했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 한번 내가 부여잡은 것이 그의 허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스쿠터는 부르르릉 출발하였다. 마침 해가 뜰 시간이 다 되었다지. 아침해를 보며 그녀는 침대에 풀썩 쓰러졌고, 그는 일출을 향해 스쿠터를 달렸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꿈을 꾸었다.
그가 꾼 꿈은 그녀를 태우고 달리는 꿈이었고, 그녀의 꿈은 그의 스쿠터 뒷자리에 타고 '부앙부앙부앙'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꿈이었다.
모든 것은 하나의 뭉개진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보름여 전, '바이바이 베스파'라는 만화를 그에게 안겨주며 그녀는 얘기했다. '나는 아무래도 청춘의 뒷좌석을 꼬옥 붙잡고 싶은가봐, 그러니 내가 청춘의 한 페이지를 접는 긴긴 유랑을 떠나기 전에 꼭 한적한 아스팔트를 스쿠터를 타고 달려보고 싶어.'
그는 그러마 하고 기꺼이 약속을 했지만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둘은 주로 아스팔트 한쪽의 인도 구석구석을 두 발로 꼭꼭 밟으며 걸어다녔다. 그것도 물론 좋았지만 언젠가는 그가 모는 스쿠터 뒷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꼬옥 잡고 귓가에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그렇게 이틀에 한번쯤은 생각을 했다.
밤이 되어도 전혀 춥지 않을만한 날씨가 된 어느 날, 머리를 감지 않아 평소와 달리 이상한 두건을 뒤집어 쓰고 외출했던 날이었다. 그녀는 오래된 휴대폰에 장식으로 붙어있는 30만화소 카메라의 힘을 빌려 가증스런 표정을 한채 어느 술집에서 그에게 한장의 뭉개진 사진을 전송했다. 오늘은 딱 달리고 싶은 복장이라면서. 그리고 한참 만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가 막 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우려는 찰나였다.
나, 지금 시동 건다.
4월 중순 답지 않은 한여름의 날씨였다. 낮에 27도까지 올라갔다던가. 새벽의 공기마저도 얇은 티셔츠 한장으로 이겨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가 다시 두건을 쓰고 무음의 환호성을 지르며 기다린지 30분쯤 후,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길을 잘못 들어서 택시들이 시속 150킬로미터로 마구 달려대는 강변북로를 그 조그만 스쿠터로 뽈뽈 거리며 달려왔다고 했다. 스쿠터가 터질까 전전긍긍하면서. 아이고마.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다니 바보같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죽음을 무릅쓰고 와 준 것이잖아. 그녀는 그가 너무 대견하여 하늘색 헬멧을 두손으로 꽈악 잡고 고마움의 박치기를 해주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도록 뺨도 토닥토닥 해주었지. 마음 속으로 '왕자님은 스쿠터를 타고 온다'는 동화책을 새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밝히지 않도록 하겠다.
막상 그의 뒷자리에 올라탔을 때는 조금 걱정도 되었다. 콩닥콩닥 거리는 가슴과 겹치는 뱃살을 들킬까 걱정되어서. 그 속내와는 상관없이 동네 사람들을 깨우지 않도록 소리를 죽이며 스쿠터는 달려나갔다. 그리고 바람에 앞머리가 뒤로 완전히 젖혀졌을 때, 그녀는 이미 완전히 들떠있었다. 신난다 신난다를 연발하며 둘은 어디로 갈까 이래저래 고민을 하다가 서강대교를 넘어 63빌딩이 보이는 여의도 고수부지로 방향을 잡았다.
스쿠터를 타고 밤의 한강을 건너는 일,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 최고였다. 하지만 한밤의 고수부지는 이미 폭주족들에게 시끄럽게 점령당한 후여서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앞바퀴를 들고 뒷바퀴로만 달리는 오토바이의 소음에 놀라 둘은 5분만에 피신을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아마도 조용할 것이라 생각되는 여의도 공원으로 다시 부앙부앙부앙.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사고, 따뜻한 커피와 초코 홈런볼도 챙겼다. 좌석의 아래에 그것들을 챙겨넣고 시동을 다시 거는 순간, 그녀는 이렇게 든든한 뒷자리는 인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규칙대로 하자면 원래는 자전거 이외에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지만 불을 밝히고 서있는 경찰차를 피해 몰래몰래 스쿠터를 몰고서 여의도 공원의 한복판까지 진출했다. 새벽 두시의 여의도 공원은 그야말로 적막하고 아름다웠다. 적당한 나무 아래 스쿠터를 세웠다. '로울러 스케이트 대여' 라고 쓰여진 안내 푯말이 있고 두툼한 나무 벤치가 있는 곳에 말이다.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아무도 없는 새벽의 공원은 마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갑자기 서울이 낯설기만 하다.
나란히 앉아 고개를 올려다보니 공원의 수은등이 보름달처럼 나뭇가지 사이에서 둥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낡은 카메라를 꺼내어 그 둘만의 보름달을 한장, 그리고 그 아래 세워진 청춘의 뒷모습을 닮은 스쿠터를 필름에 박았다. 어두워 사진이 흔들렸을지라도 분명 아름다울거라고 생각했다.
맥주를 따고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틀었다. 문명의 이기란 이렇게 낭만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나보다. 앤소니 앤 더 존슨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음악과 나무와 밤공기와 수은등 불빛과 로울러 스케이트 안내 표지판에 둘러싸인 채 그녀의 긴 유랑에 대해서, 그의 첫 모험에 대해서, 그리고 돌아온 이후의 삶에 대해서, 무엇보다 지금 나란히 앉은 순간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듣는 이 없었지만 살짝 부끄러워졌을지도. 아니면 맥주 때문이었을까. 티셔츠가 감싼 팔에 얕은 소름이 돋을 즈음, 둘은 다시 스쿠터에 올라타고 잃어버린 어른들의 도시와도 같은 주말 새벽 여의도를 달려 다시 길을 거슬렀다. 역시 부앙부앙부앙 하면서. 머리에 한가득 바람냄새와 엷은 휘발유 냄새가 섞여 흥분이 묻어났고, 귀에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달았다.
그녀의 집앞에 스쿠터가 멈춰 섰다. 소원성취하였어. 이렇게 신나는 밤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걸 보면 아마도 이 밤이 이제까지 살아온 중 가장 신나는 밤이었나봐. 그녀는 그의 볼에 솜털처럼 폭신한 뽀뽀를 했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 한번 내가 부여잡은 것이 그의 허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스쿠터는 부르르릉 출발하였다. 마침 해가 뜰 시간이 다 되었다지. 아침해를 보며 그녀는 침대에 풀썩 쓰러졌고, 그는 일출을 향해 스쿠터를 달렸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꿈을 꾸었다.
그가 꾼 꿈은 그녀를 태우고 달리는 꿈이었고, 그녀의 꿈은 그의 스쿠터 뒷자리에 타고 '부앙부앙부앙'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꿈이었다.
# by | 2008/04/24 13:02 | 낯선 꿈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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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키노 처분하셨나요? 제가 꼭 읽고싶거든요. 구할길이없어서요.
괜찮으시면nako12@naver.com으로 답변 부탁드려도될까요...
리나신 / 가끔 참지 말아주세요
사은 / 헬맷이 잘 어울린다면 더할 나위 없죠
비공개 / 전시 가고 싶어요!
무비매니 / 저 한권밖에 안가지고 있는데
스누피 / 느끼시면 되죠!
그건 그렇고 나와 오빠의 베스파는 언제 부앙부앙 달려보나.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