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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구호, 깊숙히 숨겨져 맑게 빛나는.

루구호. 어디서 소문만 들었을까. 지구상 어딘가에 아직도 존재하는 모계사회가 있다고. 산을 구비구비 여섯개쯤 넘어가면 산 꼭대기 드넓고 맑은 호수 주변에 여인국이 있다고. 그 곳에 가면 천을 머리에 두른 아주머니 뱃사공이 노를 저으며 구슬픈 노래를 불러준다고.

찾아갔다. 그곳에.
리지앙에서 여덟시간 구불구불 산을 여섯개인가 일곱개인가 넘어서 깊숙히 깊숙히 들어가니 어느 순간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가 보였다. 빠져나갈 곳 하나 없다는 그 넓은 호수의 물은 바닥의 수초가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그리고 그 호수를 비잉 둘러싸고 조그만 마을들이 있다. 그 마을에는 할머니 어머니 딸로 내려져오는 가족들이 산다. 아저씨들은 아이를 둘러매고 아줌마들은 농사를 짓고 배를 몰아 고기를 잡는 루구호.
조금씩 사람들이 들어와 객잔도 많이 생겼다지만 초입에 있는 마을을 건너뛰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상업'이란 글자와는 멀찍이 떨어져있는 진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여인국을 만날 수 있다. 그 조그만 마을에서 일주일을 놀았다. 산책하고 호수에 앉아 책을 읽다가 귀여운 동네 개들이랑 뛰어놀고 저녁이 되면 새끼 통돼지 굽는 냄새에 허기가 져 바이주 한잔을 기울이며 밥을 먹는 것으로 하루가 마무리 된다. 가끔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아줌마가 불러주는 노래에 호수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비가 오는 날, 소낙수 촌으로 산책을 갔었지. 두 시간을 걸어 구비구비 찾아간 동네는 너무 한적하여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 다만 나를 반기는 강아지와 고양이. 그 강아지는 비가 오는대도 동네 언덕까지 나를 바래다 주었다. 졸졸 쫓아오다 또 앞서가서 나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강아지의 배웅이 끝나자 지나가던 옆동네 아저씨는 나를 공짜로 차에 태워다 숙소 앞까지 내려놓았지. 혼자 그렇게 비맞고 다니면 안된다면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어.

되짚어 나오기 싫었던 곳. 그래서일까. 나오는 길에 길이 끊기고 공안에게 붙잡혀 세시간을 더 길 위에서 보내야 했다. 다들 안절부절 하고 있었지만 나는 생각했다. 이 길이 아직 나를 붙잡고 있구나. 나를 보내기 싫어하는구나.
마음을 그렇게 풀고 나니, 길이 스르르 내 발목을 놓는다. '너는 이제 가도 괜찮다' 고.

일주일을 쉬었지만, 한달의 여유를 얻었다.
루구호는 그런 곳이다. 시간이 아주아주 천천히 흐르는 곳.


루구호, 맑은 여인들의 호수


<사진들>
- 리지앙에서 루구호로 가는 길.
- 루구호. 배와 여자와 호수
- 초해. 풀의 바다
- 새로 지은 초혼교와 진짜 초혼교
- 거위들
- 이 초혼교는 결혼이란 제도가 없는 루구호 사람들의 첫날밤 의식 같은 것.
- 가장
- 탑
- 리거, 저 섬의 제일 끝 방에 머물렀다
- 내 고기를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빛에..돼지 코를 주었다
- 저 애저구이. 맛있었어. 코랑 귀랑 입은 못먹었지만
- 선착장
- 나룻배
- 섬으로 가는 길
- 말
- 이 배를 탔어
- 호숫가 집
- 옥수수가 익는다
- 강아지. 내 품에서 한시간을 잤다
- 호수, 섬
- 방에서 본 밤풍경
- 회색 하늘과 회색 호수
- 회색, 녹색
- 바람이 분다
- 하늘 호수
- 소낙수 촌
- 붉은 꽃
- 동네 어귀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던 강아지
- 아기 고양이
- 컵에 물먹다


by 니야 | 2008/08/21 23:45 | 세계여행일지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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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8/22 00: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니야 at 2008/08/22 22:05
건강하나는 최고지 호호호
Commented by 첼♡ at 2008/08/22 01:07
우와ㅡ 글과 사진만 접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네요. 그런데 초혼교란 <결혼이란 제도가 없는 루구호 사람들의 첫날밤 의식 같은 것>이라니.. 초혼교를 함께 건너는 것인가요??;ㅅ;
Commented by 니야 at 2008/08/22 22:05
네, 남녀가 자러 가기 전에 저 다리를 건넜다는군요
Commented at 2008/08/22 02: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니야 at 2008/08/22 22:06
오오오오! 아빠가 되다니 축하축하
Commented by saraswati at 2008/08/22 08:50
아 사진 좋다!
Commented by 니야 at 2008/08/22 22:06
나도 루구호 사진들이 참 좋아
Commented by at 2008/08/22 17:45
잘 지내고 있다니 반갑군. 사진을 보니 정말 딴 세상 같다. 회사는 여전히 정신없이 돌아가고 사람들도 정신없이 살고있다. 사진을 보니 정말 볼살이 쪽 빠졌네. 밥도 잘 챙겨먹고 여유로움도 배부르게 드시고 오시길. 최아트에게 주소 알았으니 가끔 들를께.
Commented by 니야 at 2008/08/22 22:06
꺄앗! 팀장님! 인도에서 다시 살 찔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하고 있어요. 회사로 엽서 보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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